“육체적 관계는 포기해도 그의 사유에서 벗어나긴 힘들어”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8.04.28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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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발터 벤야민 평전’…위기의 삶, 위기의 비평

“육체적 관계는 포기해도 그의 사유에서 벗어나긴 힘들어”


아마 각종 글쓰기에서 교본이 될 사상가를 꼽으라면 단연 발터 벤야민(1892~1940)이 첫손이다. 독일계 유대인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그는 학술논문은 물론이고 서평, 철학, 역사, 라디오 대본, 편찬물, 단편소설 등 장르를 막론했고, 장난감·여행·포르노·예술·음식 등 소재도 끝이 없었다.

‘잡식’ 작가가 흔히 지니는 한계도 그에겐 보이지 않았다. 기존의 이해를 바꿔놓을 만큼 견고한 내용, 세밀한 언어 표현으로 대변되는 위대한 문장력, 그리고 이성을 넘어선 감각적 형식미 등이 70년이 지난 ‘지금’ 시대에도 유효한 미학으로 남아있다.



그의 지성적 매력이 얼마나 넘쳤는지, 아내 도라는 “남편과의 육체적 관계를 포기할지언정, 그의 강력한 사유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벤야민의 독특한 글쓰기 미학은 그의 삶이 증명한다. 그는 다자적 연애관계를 즐겼는데, 특히 짝 있는 사람을 선호했다. 마약과 노름에 빠진 삶은 비도덕적 요소로 비난받기 일쑤였다.



저자는 그의 삶과 글이 모순 속에서 특별한 지도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봤다. 다면성의 소유자였지만 내면의 체계적 일관성이나 텍스트로서의 일관성을 잃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사상가 아도르노는 벤야민의 의식에 대해 “‘원심적’으로 통합되는 특이한 의식, 곧 사방으로 확산됨으로써 정립되는 의식”이라고 말했다.

청년 시절 벤야민은 낭만주의적 사유에 머물다가 급진주의로 선회했고 다시 유물론적·인류학적 성향으로 옮겨왔다. 글쓰기의 단계별 진보를 보여주는 배경인 셈.


‘종교로서의 자본주의’를 쓸 때 그는 “자본주의라는 숭배종교는 빚을 지게 하고 죄를 짓게 한다”며 “자본주의가 종교가 되면서 존재는 개혁되는 것이 아니라 분쇄된다”고 꼬집었다.

대학교수를 평생 꿈꿨지만 끝내 실패한 벤야민은 타인에게 끊임없이 학문적 자극을 주는 ‘학자 위의 학자’였다. 시온주의자인 게르숌 숄렘은 “내 삶의 중심에는 그 사람뿐”이라며 “발터에게는 스스로를 소진함으로써 자기 글의 질서가 되고자 하는 그 무엇이 있다”고 고백했다.

아도르노는 ‘철학의 현재성’에서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기원’을 인용 없이 갖다 쓰는가 하면, 에른스트 블로흐는 ‘이 시대의 유산’을 쓰면서 벤야민의 몽타주 형식을 ‘훌륭하게’ 차용하기도 했다.

책은 벤야민의 전체적 윤곽을 잡기 위해 연대기적 접근법을 취하면서 일상에 주목해 삶의 각 단계와 작업들의 역사성을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

저자는 “그의 삶에 대한 객관적 접근과 동시에 연민과 이해의 잣대”라며 “한 개인의 삶을 철저히 학술과 비평의 관점에서 꿰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터 벤야민 평전=하워드 아일런드, 마이클 제닝스 지음. 김정아 옮김. 글항아리 펴냄. 936쪽/4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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