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 2급인 대학생 최모씨(24)는 지난해 60일 동안 홀로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좋아해서 혼자 해외여행만 수차례 다녀왔다. 하지만 국내 여행을 혼자 가본 적은 없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접근할 수 있는 곳을 찾기 힘들어서다.
최씨는 "KTX를 타고 이동을 해도 막상 시내 안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가 힘들다"며 "차를 타고 가족, 친구들과 국내 여행을 갈 수는 있지만 유럽에서처럼 자유롭게 혼자 다닐 엄두는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음료수 한 잔도 맘껏 못 마셔"…장애인 편의시설 없는 여행지
여행지에 도착해도 불편함은 계속된다. 경사로 등이 없어 가지 못하는 시설물이 대부분이다. 관광지 주변 식당, 카페에는 턱이 있어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고 장애인용 화장실도 드물다.
김남진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국장은 "한여름에도 휠체어 사용자들은 장애인용 화장실을 못 찾을 까봐 음료수 한 잔 마음껏 마시지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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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는다. 2016년 한국장애인개발원 조사 결과 숙박업소의 35.7%가 장애인 객실을 1% 이하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예 보유하지 않은 업소도 7.1%나 됐다. 물론 객실이 30개 이하인 펜션, 게스트하우스 등은 법적 의무조차 없다.
전윤선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는 "장애인 객실이라고 해도 일반객실을 개조 해 실제 사용이 불편한 곳이 많다"며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는 숙박업소가 없어서 여행하다가 노숙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갈 수 없는 곳이 '무장애' 관광지?…정부도 법도 갈길 멀어
정부가 선정한 '열린 관광지'(장애인, 고령층, 영·유아 동반 가족을 위한 이동·관광에 불편함 없는 무장애 관광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전 대표에 따르면 2015년 열린 관광지로 선정된 '통영케이블카'에 타려면 전용 휠체어로 갈아타야 한다. 2016년 선정된 '정동진 모래시계 공원'에는 휠체어 길이 있지만 정작 해돋이를 보러 해변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전 대표는 "열린 관광지는 장애인들이 실제 관광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보다 세밀한 고려 없이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장애인은 여행 정보도 얻기 힘들다.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가 지난해 서울시 120여개 관광지를 조사한 결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이 제공되거나 통역센터와 연계된 곳은 한 곳뿐이었다.
장애인 관광권 보장은 법적으로도 미흡하다. 지난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장애인의 관광활동 차별금지가 새롭게 들어가 시행됐다. 하지만 실질적인 편의 제공이 현실화되려면 7~12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정당한 편의 제공의 구체적 내용이 담긴 시행령 개정안을 올해 2월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장애인이 관광할 수 있도록 관광시설 이용과 관광지 접근 등에 관한 정보·안내서비스를 제공하고, 장애인이 요구하는 경우 관광활동 보조인력을 지원하거나 연계토록 했다.
정호균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정책팀장은 "편의제공 유예기간이 2025~2030년으로 현실화되기까지 매우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라며 "정당한 편의의 구체적 내용에서도 시설물 접근성을 보장하는 내용이 누락 돼 관련 규정이 개선될 수 있도록 정책권고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