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 가도 해돋이 못보는 장애인, "여행은 꿈"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2018.04.24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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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친구 있나요?④]장애인도 관광권 누려야…"접근성, 숙박·편의시설 개선 시급"

편집자주 살아만 있다고 사는게 아니다. 돌아다니고 배우고 일하고 놀 수 있어야 한다. 인간다운 삶의 기본 조건이지만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어렵다. 집밖에 나서는 순간 넘기 힘든 수많은 벽에 직면한다. 배제가 일상이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의 공간에 끼여들지 못한다. 비장애인에게 '장애인 친구'는 낯설다. 평소 접하지 못하니 공감도 힘들다. 차별과 배제에 또 다시 익숙해지는 약순환이 반복된다. 우리 곁에 있는 장애인 이웃의 눈으로 우리가 익숙해선 안될 일상을 돌아본다.

정동진 가도 해돋이 못보는 장애인, "여행은 꿈"


"혼자 국내여행이요? 생각도 못하죠."

전동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 2급인 대학생 최모씨(24)는 지난해 60일 동안 홀로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좋아해서 혼자 해외여행만 수차례 다녀왔다. 하지만 국내 여행을 혼자 가본 적은 없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접근할 수 있는 곳을 찾기 힘들어서다.

최씨는 "KTX를 타고 이동을 해도 막상 시내 안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가 힘들다"며 "차를 타고 가족, 친구들과 국내 여행을 갈 수는 있지만 유럽에서처럼 자유롭게 혼자 다닐 엄두는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애인에게 여행은 '엄두조차 나지 않는' 현실이다. 보건복지부 '2015 장애인통계'에 따르면 장애인의 9.8%만이 여행(관광·등산·낚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국민 89.5%가 여행 경험이 있다고 답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6년 국민여행실태조사' 결과와 대조된다.

◇"음료수 한 잔도 맘껏 못 마셔"…장애인 편의시설 없는 여행지



우선 장애인들은 여행지에 가는 것부터 어렵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6년까지 등록된 고속·시외버스 1만730대 중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버스는 단 한대도 없다. KTX 등 기차에는 장애인석이 따로 있지만 열차당 2석 정도에 불과하다.

여행지에 도착해도 불편함은 계속된다. 경사로 등이 없어 가지 못하는 시설물이 대부분이다. 관광지 주변 식당, 카페에는 턱이 있어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고 장애인용 화장실도 드물다.

김남진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국장은 "한여름에도 휠체어 사용자들은 장애인용 화장실을 못 찾을 까봐 음료수 한 잔 마음껏 마시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동진 가도 해돋이 못보는 장애인, "여행은 꿈"
장애인이 머물 수 있는 숙박시설도 부족하다. 장애인편의증진법상 30개 이상 객실을 보유한 숙박시설은 1% 이상, 관광숙박시설은 3% 이상 장애인 객실을 갖춰야 한다. 객실 100개 중 1~3개만 장애인 객실로 두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는다. 2016년 한국장애인개발원 조사 결과 숙박업소의 35.7%가 장애인 객실을 1% 이하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예 보유하지 않은 업소도 7.1%나 됐다. 물론 객실이 30개 이하인 펜션, 게스트하우스 등은 법적 의무조차 없다.

전윤선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는 "장애인 객실이라고 해도 일반객실을 개조 해 실제 사용이 불편한 곳이 많다"며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는 숙박업소가 없어서 여행하다가 노숙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갈 수 없는 곳이 '무장애' 관광지?…정부도 법도 갈길 멀어

정부가 선정한 '열린 관광지'(장애인, 고령층, 영·유아 동반 가족을 위한 이동·관광에 불편함 없는 무장애 관광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전 대표에 따르면 2015년 열린 관광지로 선정된 '통영케이블카'에 타려면 전용 휠체어로 갈아타야 한다. 2016년 선정된 '정동진 모래시계 공원'에는 휠체어 길이 있지만 정작 해돋이를 보러 해변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전 대표는 "열린 관광지는 장애인들이 실제 관광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보다 세밀한 고려 없이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장애인은 여행 정보도 얻기 힘들다.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가 지난해 서울시 120여개 관광지를 조사한 결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이 제공되거나 통역센터와 연계된 곳은 한 곳뿐이었다.

장애인 관광권 보장은 법적으로도 미흡하다. 지난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장애인의 관광활동 차별금지가 새롭게 들어가 시행됐다. 하지만 실질적인 편의 제공이 현실화되려면 7~12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정당한 편의 제공의 구체적 내용이 담긴 시행령 개정안을 올해 2월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장애인이 관광할 수 있도록 관광시설 이용과 관광지 접근 등에 관한 정보·안내서비스를 제공하고, 장애인이 요구하는 경우 관광활동 보조인력을 지원하거나 연계토록 했다.

정호균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정책팀장은 "편의제공 유예기간이 2025~2030년으로 현실화되기까지 매우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라며 "정당한 편의의 구체적 내용에서도 시설물 접근성을 보장하는 내용이 누락 돼 관련 규정이 개선될 수 있도록 정책권고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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