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리가? 그렇다면 행복을 바라지도 말라는 말이냐? 그런 말이다.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는 "인간은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그럼으로써 불행을 창조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니 "불행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행복에 대한 욕구에서도 벗어나라"고 당부한다.
"행복을 바라는 순간에 그대는 현재로부터 떠났다. 그대는 존재로부터 떠났다. 그 어디에도 없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로 옮겨가 버렸다. 그대는 꿈속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꿈은 절대로 충족되지 않는다. 행복에 대한 욕구는 꿈이다. 꿈은 실재가 아니다. 꿈을 통해서는 아무도 실재에 도달할 수 없다. 그대는 기차를 잘못 탔다."
돌이켜보면 늘 이런 식이다. 도대체 행복열차는 어디서 타고, 행복역은 어디에 있나? 행복역은 '지금 여기'에 있다. '다음'이 아니라 '지금',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다. 그러니 어디로 달려가면 안 된다. 어떤 열차든 올라타면 행복에서 멀어진다. 나는 방금 '행복역'을 떠났으니까. 나는 어디든 갈 필요가 없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찾아 누리면 그만이다. 행복열차는 없다. 그것은 가짜다. 꿈이다. 환상이다. 덧없는 욕망의 질주다.
행복을 바랄수록 불행이 다가오는 이 역설! 행복의 욕구가 불행의 씨앗이 되는 이 딜레마! 결국 내 욕망이 불행을 창조한다. 욕망은 오로지 '다음 저기'를 향해서만 달린다. 그러나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 다음 말고 지금, 저기 말고 여기에 있다. 행복은 창조되지 않는다. 단지 드러난다. 지금 여기에서 드러나는 행복을 알아차리면 언제나 행복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의 행복을 놓치고 다음 저기에서 행복을 창조하려 한다. 오쇼는 "행복이 바로 그대 눈앞에 있는데 왜 자꾸 곁눈질을 하냐"고 묻는다.
"행복은 그대와 함께 있다. 그대가 어디에 있든지 행복도 거기에 있다. 행복은 그대를 에워싸고 있다. 행복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행복은 공기와 같고 하늘과 같다. 행복은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행복은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다. 하지만 그대는 바로 봐야 하고, 즉시 봐야 한다. 곁눈으로 보면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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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행복'이라는 이름의 열차를 타고 행복역을 떠난다. 나의 행복열차는, 아니 욕망열차는 쉬지 않고 달린다. 내 마음은 멀고 먼 곳을 헤맨다. 숱한 역들을 스치며 차창 밖으로 석양이 진다. 아, 행복은, 내 행복은 어디에? 저 노을 저리 아름다운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