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아마존과 신세계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2018.04.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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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우리 도시로 오라." 미국에선 주요 도시의 '아마존 모시기' 경쟁이 한창이다. 시애틀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아마존이 제2 본사 후보지를 공모한다고 발표하자 북미 300여개 도시가 신청했다. 제2 본사를 통해 5만개 일자리를 만들고 50억달러(한화 5조3000억원)를 투자하겠다는 아마존의 청사진에 유치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아마존은 지난 연말 이들 도시 중 20곳을 후보지로 압축했다. 최근엔 워싱턴DC·시카고·댈러스·인디애나폴리스 등 10여개 도시에 은밀히 실사단을 파견해 후보지 평가에 나섰다. 해당 도시들은 아마존 실사단을 사로잡을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검소함을 중시하는 아마존 정신에 맞춰 실사단이 머무는 48시간 동안 화려한 대접 대신 각자 도시의 매력과 장점을 최대한 펼쳐 보일 방안 구상에 나섰다. 전세 비행기나 최고급 호텔, 주지사 관저에서의 성대한 만찬 등 전통적인 접대 방식은 금물이라는 나름의 실사 공식까지 전파되고 있다.



도시의 장점과 성장 가능성 등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대학교수와 아마존을 철저히 분석한 젊은 전문가 등을 실사단을 맞을 구성원으로 섭외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전거·보트 등 지역 특성에 맞는 운송수단으로 아마존 제2 본사가 들어설 만한 후보지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만든 곳도 있다. 아마존의 환심을 사려고 재정적인 인센티브 제안도 망설이지 않는다. 뉴저지와 뉴와크가 각각 70억달러, 몽고메리카운티가 50억달러의 세금감면 혜택을 제안했다.

같은 시점, 한국에선 신세계그룹의 온라인센터 건립 반대 운동이 격렬하다. "경기 하남에 1조원 이상 투자해 아마존을 능가하는 최첨단 온라인센터를 만들겠다"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발표에 하남지역 주민들의 반대 여론이 확산됐다. 일부 주민들은 청와대에 반대 청원까지 제기했다.



혐오시설이 아니라 지역경제 등에 도움이 되는 시설을, 그것도 국내 대표 유통기업의 핵심 투자사업을 거부하는 이유는 뭘까. 지금도 교통체증이 심각한데 대규모 물류센터가 들어서면 교통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반대 이유다. 물류센터 특성상 대형 트럭이 자주 드나들면 주거·교육환경이 침해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둔 지자체장도 "주민 동의 없이는 어떤 인허가 절차에도 협조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신세계 온라인센터 건립에 제동이 걸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경기 구리 갈매지구에서도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을 백지화하고 하남으로 눈을 돌렸다. 신세계의 한 임원은 "단순 물류센터가 아니라 그룹 온라인 사업본부의 핵심기지로 활용하려는 고부가가치 사업계획을 무조건 부정하고 있다"며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어렵게 1조원 넘는 자금을 끌어 왔는데 사업이 지연돼 매우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시애틀은 2010년 아마존 본사가 들어선 이후 380억달러 직간접 투자, 본사 인원 4만명 고용, 파생일자리 5만3000여개 창출 등 어마어마한 '아마존 효과'를 경험하고 있다. 유통기업의 투자사업을 반대만 한다면 한국에서 이 같은 경제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수십 곳 후보지 중 골라서 사업하는 미국 기업, 곳곳에서 문전박대 당하는 한국 기업. 출발선부터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송지유 산업2부 차장송지유 산업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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