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가져가면 손해" 10년만에 비닐 수거 '포기'

머니투데이 부천(경기)=최동수 기자, 이동우 기자 2018.04.0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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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의 반란-재활용 대란, 급한 불은 껐지만…]⑦정부 발표에도 업계는 '답답'…"마구잡이 버리는 시민도 문제"

편집자주 단 며칠 만에 아파트 곳곳마다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벌어졌다. 이미 반년 전부터 예고됐지만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결과다. 부랴부랴 발등의 불을 껐지만 문제는 복잡하다. 정부와 지자체, 아파트 주민, 재활용업체 등 쓰레기 분리수거를 둘러싼 입장이 서로 얽혔다. 재활용 비용과 수익은 나라밖 관련 시세와도 직결된다. 폐자재 재활용 정책을 근본적으로 점검하고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대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2일 경기도 부천의 재활용 쓰레기 수거업체인 성재산업의 야적장에 수거된 폐기물이 쌓여 있다. / 사진=최동수 기자2일 경기도 부천의 재활용 쓰레기 수거업체인 성재산업의 야적장에 수거된 폐기물이 쌓여 있다. / 사진=최동수 기자


"지금 야적장에 쌓여 있는 폐비닐만 1톤(t)이 넘는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쓰레기 대란'이 본격화된 2일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성재산업 현장을 찾았다. 야적장에는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비닐 봉투가 쌓여 있었다. 서울 영등포와 강서구 일대 아파트를 돌며 재활용 폐기물을 수거하는 이 업체의 대표 황일환씨(46)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황 대표는 이날 10년 넘게 해왔던 폐비닐 수거를 하지 않았다. 환경부가 폐비닐·스티로폼 등을 종전처럼 정상 수거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황 대표가 전해 들은 얘기는 없었다. 황 대표는 "원래대로 수거 하라는 정부 지침이 있어도 선별업체에서 전처럼 비용을 요구하면 수거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폐기물 재활용은 수거업체가 각 지역을 돌며 폐기물을 수거하고 이를 종류별로 나눠 재활용 쓰레기 선별업체에 파는 구조다. 선별업체는 발전소나 가공업체 등으로 폐기물을 팔거나 중국 등 외국에 수출해 수익을 얻는다.

이번 쓰레기 대란의 원인이 된 것도 서울·수도권 지역의 48개 선별업체가 매입을 거부하면서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부터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며 폐기물 가격이 폭락했다. 폐지 가격은 지난해 하반기 1㎏당 140~150원에서 올해 3월 90~110원까지 떨어졌다.



이를 빌미로 선별업체는 수거업체에게 폐비닐의 처리 비용을 요구하는 추세다. 원재료가 다양해 재활용이 어려운 폐비닐은 수익이 나지 않는다. 기존에는 폐지, 폐병 등을 수거한 수익으로 충당이 됐지만 폐기물 가격이 급락하면서 감당이 안된다.

결국 수거업체는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지경이다. 황 대표는 "지난해 하반기 월 평균 매출이 3000만~4000만원 정도가 됐었는데, 올해는 지금까지 한달에 1000만원 밖에 안된다"며 "물류비용을 포함하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선별업체도 수요처가 없어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수거업체로부터 비닐·플라스틱을 건네받아 가공업체로 보내는 제이앤크린테크의 이인철 대표(40)도 "폐비닐은 주로 국내 열병합발전소나 시멘트공장에서 연료로 활용됐는데, 발전소 설립도 무산되는 등 지난해부터 가공업체의 수요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2일 경기도 부천 성재산업의 야적장에서 흔히 보이는 플라스틴 용기와 비닐. 음식물에 오염돼 재활용이 어려운 상태다. / 사진=최동수 기자2일 경기도 부천 성재산업의 야적장에서 흔히 보이는 플라스틴 용기와 비닐. 음식물에 오염돼 재활용이 어려운 상태다. / 사진=최동수 기자
업계에서는 수거된 재활용품의 상태가 불량한 것도 수익이 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음식물 등 이물질이 묻은 일회용 음식 용기나 포장재로 쓰인 재활용품은 깨끗하게 재가공하기 어렵다. 이날 만난 업체들도 실제 수거된 폐비닐의 30% 가까이는 소각장으로 보낸다고 설명했다.

선별업체를 운영 중인 김서원 크린자원산업 대표(40)는 "폐기물 수출이 중국에 치중된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시민의식도 문제"라며 "오염된 비닐이나 플라스틱 처리 비용에 너무 큰 비용이 들고 있다"고 말했다.

재활용 쓰레기 처리를 눈으로 보고 있는 아파트 경비원들도 시민의식 개선 문제를 지적한다.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 경비원 이모씨(62)는 "스티로폼이나 비닐을 일일이 씻어서 내는 주민은 별로 없다"며 "그렇다고 씻어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말을 주민들에게 했다가 재계약이 안 되는 경우도 있어서 다들 주의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재활용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현재 얼마나 폐기물의 수요가 필요한지 얼마나 배출이 되는지 제대로 된 정확한 통계 하나 갖고 있지 않다"며 "이런 식이라면 폐지나 다른 폐기물에서도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효율적인 분리와 배출·수거·처리가 이뤄지는지 공공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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