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정규직·남성… '꼰대 노조'에 미래는 없다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김영상 기자, 이영민 기자 2018.03.20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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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달러 시대-노조의 조건①]기득권 사수 집단 전락…'미래 위한 혁신', '약자 위한 양보' 실종

편집자주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2만9700달러(추정치). ‘국민소득 3만 달러’는 더 이상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위치다. 양적 평균치인 소득 기준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사회는 3만 달러 시대에 부합할까? 우리는 이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3만 달러 시대를 체감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숫자는 낯설기만 하다. 우리는 이 시대를 2만 달러 시대와 다르게 살아내야 한다. 머니투데이는 그 달라야 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얘기를 펼치고자 한다.

대기업·정규직·남성… '꼰대 노조'에 미래는 없다


"기업 실적이 최악인데 노조는 부를 수 있는 최대한 임금 인상률을 요구한다. 노동자의 권익보호보다는 표를 얻기 위한 정치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 (현대차 7년차 직원 A씨, 32)

"우리 회사 노조는 어용 같다. 임금은 3년째 동결, 성과급은 매년 감소다. 회사는 매년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는데 임금 인상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대기업계열 건설사 6년차 직원 A씨, 33)



대한민국 노조는 위기다. 어느새 노조에는 기득권 집단이란 딱지가 붙었다. 보수와 재계에서 쏟아내는 비판 때문만이 아니다. 바탕에는 관료화된 노조 지도부가 있다. 불만은 내부에서도 터져 나온다. 상생과 대타협이란 요구는 이념을 떠나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지만 노조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노조는 '대기업 정규직 남성'이 장악했다. 이미 고령화된 이들은 노동환경 자체가 달라질 미래 산업사회를 고민하기보다 당장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청년 노동자들도 노조 지도부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다.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전 이사장은 "한국 노조는 대기업·공공부문의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배하고 있다"며 "여성이나 중소 영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등 절대다수가 소외됐다"고 말했다.

기득권을 쥔 이 같은 '꼰대 노조'의 특성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개수로는 전체 4%도 안되는 대기업(조합원 1000명 이상, 2016년 기준) 노조가 총 조합원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그만큼 노조 자체가 대기업 중심으로 조직됐다.

남성 비율도 압도적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전국노동조합 조직현황'(2016년 기준)에 따르면 노조원 중 여성 비율은 22.4%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역시 총 조합원 중 여성 조합원이 24%(2018년 1월 기준)에 그친다.

간부로 갈수록 이 비율은 더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의 간부(대의원·중앙위원) 907명 중 여성 간부는 120명(13%) 밖에 안 된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이다 보니 연령대도 높다. 이영수 전 한국GM 부평비정규직지회장은 "20~30대에 노조위원장을 하던 사람들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주축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며 "이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조직이 관료화됐다"고 말했다.

한노총의 2016년 조합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속 조합원 중 35세 미만은 약 21%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러니 노조의 인기가 떨어진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04년 노조 가입 가능자 중 실제 가입 비율은 정규직이 73.1%, 비정규직이 66.1%였다. 하지만 이는 2017년 8월 기준 68.4%, 61.2%로 낮아졌다. 직장에 노조가 있어도 가입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세대교체도 안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 구성을 보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소속 정규직원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안정적인 노동시장에 젊은이들이 취업하기 힘들어 노조가입이 가능한 젊은 세대 자체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꼰대 노조는 '미래를 위한 혁신', '약자를 위한 양보'보다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한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자동차 대리점에서 근무하는 특수고용노동자로 구성된 판매연대노조가 완성차 노조의 반대로 금속노조 가입이 무산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상황이 이런데 AI(인공지능)가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떻게 경쟁력을 키우고 무슨 방법으로 일자리를 지키고 창출할지 노사가 머리를 맞대는 일은 꿈만 같다.

결국 노조가 변하려면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수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조합원들이 임금 인상에만 관심 있다 보니 이를 실현 시켜 줄 노조 지도부가 선출되고 노동운동이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바뀌는 노동환경에 맞춰 다양한 목소리를 내줄 차세대 간부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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