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사기치다 진짜 피 본 '여자 잡스'의 몰락

머니투데이 유희석 기자 2018.03.1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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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몇 방울로 70가지 병 진단한다던 ‘테라노스’ 창업자…키신저 등 유명인 투자받았지만 결국 사기 판명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14일(현지시간) '대규모 사기' 혐의로 기소당한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 CEO(최고경영자). /AFPBBNews=뉴스1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14일(현지시간) '대규모 사기' 혐의로 기소당한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 CEO(최고경영자). /AFPBBNews=뉴스1


'여자 스티브 잡스', '세계 최연소 여성 억만장자' 등으로 불리던 엘리자베스 홈즈. 기존 의학 상식을 뒤집는 획기적인 질병 진단방식을 내세운 테라노스 설립자인 그녀가 결국 '공식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기술력 과장, 매출 조작 등으로 투자자와 고객을 농락한 혐의가 적용됐다.

14일(현지시간)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테라노스와 CEO인 홈즈, 전 대표이사였던 서니 발와니를 '대규모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SEC는 공소장에서 테라노스가 7억달러(약 7451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를 속이기 위해 거짓되고 왜곡된 정보를 전달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14년 미국 국방부와의 계약으로 1억달러(약 106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는 10만달러(1억670만원) 수준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SEC의 기소 이후 홈즈는 50만달러의 벌금 부과와 앞으로 10년간 상장 기업 임원으로 활동하지 않는다는데 합의했다. 또한 테라노스 주식 1890만주도 포기하면서 경영권도 반납했다. 테라노스는 이날 성명에서 "테라노스와 홈즈 모두 잘못을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는다"고 짧게 답변했다.



스티븐 페이킨 SEC 조사집행국장은 "이번 사례는 비상장 기업이나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혹은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기업이라고 해서 연방증권법 적용의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학교 화학과 출신인 홈즈는 '누구나 저렴한 가격으로 건강관리를 받게 하겠다'는 목표로 2003년 테라노스를 설립한다. 2012년 한 방울의 피로 200여개의 질병 진단이 가능한 '에디슨'을 개발했다고 주장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홈즈가 싱가포르 유전자연구소 인턴 시절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검사를 위해 많은 혈액을 채취하느라 고생하는 환자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테라노스는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혁신 기업으로 대우받게 된다.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매력적인 CEO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전 해군사령관 등 유명 인사로 구성된 이사진은 회사 미래에 대한 판타지를 키웠다.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는 몇 년 사이 400만달러에서 90억달러(약 9조5800억원)로 급증했고, 지분 50%가량을 보유했던 홈즈도 30살에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5년 10월 테라노스의 에디슨이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질병은 가장 기초적인 10여 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로 알려지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테라노스가 자체 개발한 에디슨이 아닌, 다른 회사 진단기기를 이용하고 있다"는 전 직원들의 폭로가 나왔고, 미국 보건당국도 '기술력 과장'을 이유로 테라노스 연구소 면허를 취소했다. 투자자와 고객들의 소송도 줄을 이었다.

테라노스는 결국 핵심 사업이었던 혈액 검사를 포기한다. 이후 지난해 12월 부실자산 전문 투자사 포트리스인베스트먼트로부터 1억달러(1065억원)를 대출받아 신생아 소두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지카 바이러스 진단기기 '미니랩' 개발에 힘을 쏟고 있으나, 이미 '죽은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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