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안희전 전 충남지사의 기자회견이 돌연 취소된 8일 오후 충남도청 로비에 마련된 단상에 방송사들의 무선마이크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8일 충남도청에는 오전부터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안희정 전 지사가 수행비서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지 나흘만에 직접 입장 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은 이날 오후 3시로 예고됐다. 안 전 지사는 국민들에게 실망을 준 것에 대해 사죄하는 한편 향후 법적 공방을 대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갈 것이란 관측을 낳았다.
기자회견보다 검찰 수사 협조가 우선이라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한 김지은 전 충남도 정무비서가 변호인을 선임해 검찰 고발에 나섰고 서울서부지검이 수사팀을 꾸려 안 전 지사의 서울 소재 오피스텔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선 상태다. 수사 칼날이 사건 당사자인 안 전 지사로 겨눠진 만큼 기자회견이 경솔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이와 달리 기자회견 예정일 하루 전인 지난 7일 안 전 지사가 설립한 연구소 여직원이 1년 넘게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는 추가 폭로가 나왔고 제3, 제4의 폭로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따라서 안 전 지사가 이에 대한 부담을 느껴 기자회견에서 입장 표명을 포기한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성폭행 폭로와 잠적, 기자회견 계획과 취소 등에서 보인 안 전 지사의 태도는 더욱 논란거리다. 안 전 지사는 사건이 불거진 직후 6일 새벽 페이스북을 통해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며 김지은씨의 폭로 사실을 인정하고 충남지사직 사퇴 의사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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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호한 표현으로 법적 책임을 모면하고 정치적 회생에 대한 일말의 여지를 남기려 한다는 해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또 한때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던 그가 국민들의 실망과 의구심에 정정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잠적한 채 비난을 피하려고만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안 전 지사와 정치 행보를 같이 해왔으며 대선 경선 캠프에도 참여했던 한 인사는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대응하는 모습도 실망스럽다"며 "기자회견을 취소하며 남긴 메시지도 한심스럽다. 자진출두하면 그만이지, 어디에 숨어있는 지도 모를 사람이 검찰에게 소환해달라는 말을 보니 실소가 난다"고 씁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