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방 창문 앞에 목련나무가 있다. 목련은 폭탄처럼 귀신처럼 터졌다. 화자는 꽃의 아름다운 개화에 놀란다. 꽃은 화자를 유혹하는 것을 넘어 발정한다. 봄은 점잖은 단어다. 발음이 거칠거나 사납지 않다. 고양이 걸음처럼 부드럽다. 꽃은 세상이 끝날 듯, 한순간에 숨통이 끊어질 듯 최선을 다하여 피고, 미쳐서 맨발로 뛰어내릴 듯 진다.
시와 사진의 원리는 같다. 대상을 포착하는 기술 때문일 것이다. 베니스나 생라자르역 등 외국의 지명도 몇 군데 눈에 띈다. 시집의 첫 시 '허밍처럼'에서는 "환하게 빛을 지고 선 사이프러스, 나무가 예를 갖춘 듯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쯤 되는 유럽의 풍경이다. 성당이나 미사 등의 어휘에서 시인의 종교를 눈치 챌 수도 있다. 등산 경험이나 어휘를 쓴 시들도 보인다.
입산금지 팻말을 무시하고
정광산 비탈길로 발 들인다
가쁜 스틱이 호흡을 가파르게 끌고 간다
어휴, 무슨 산길이 낙엽으로 길을 지워놓는 걸까
바람이 나뭇가지를 들어 허공을 회초리 칠 때
왼발이 중심을 아찔, 엎지른다
호신용 내 등산 스틱이
다급하게 산을 깨운다
산등을 찌르려는 것은 아니었다
허둥지둥 공기를 찢고 낙엽을 흩으며
벼랑길로 도망치는 고라니 새끼
나는 저를 겨냥한 적 없는데
등이 슬픈 목숨이 뛴다
본능을 끌고 가는 시퍼런 맹렬
목숨을 튀기며 사라지는 발자국이다
저도 모르게 갈겼던 애인의 귀뺨처럼
달아나는 짐승의 내장 같은 공포
-'너는 왜 내게 등을 보이니?' 전문
화자가 등산용 스틱에 의지하여 비탈길을 오른다. 호흡이 가파르니, 오히려 "가쁜 스틱"이 사람을 끌고 가는 형국이다. 산길은 낙엽에 덮였다. 바람이 불자 나뭇가지 끝이 허공을 후려친다. 갑자기 왼발이 휘청 하자 왼쪽으로 몸의 중심이 쏠려 넘어질듯 하는 화자. 중심을 잡아보려 스틱을 다급하게 땅에 찍는다. 스틱에 찍혀 깨어나는 산. 고라니 새끼가 놀라서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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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는 "등이 슬픈 목숨"을 가지고 있는 짐승이다. 등산객에게 놀란 고라니는 "본능이 끌고 가는 시퍼런 맹렬"한 자세로 뛰다. 시 '나무나 나나 바람이나 뭐'에서 화자는 북한산 향로봉 날등바위를 오르고 있다. 아이젠을 신고도 "한 발 나가면/ 한 발 밀리"는 미끄러운 눈길이다. 이런 눈길이 화자는 낯설다.
이런 길을 가면서 화자는 "다음 세상 찾아가는 길"이 이렇게 낯설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시인은 '깨어있는 꿈'에서는 태안면 신두리에 꽃 구경을 하러 갔다가 철새들을 봤나보다. 바다는 썰물이어서 바닷물이 끝없는 수평선을 향해 나간다. 삽시간에 물이 찰 것이다. 이런 바다에 새들은 복숭아뼈까지 물이 차올라 발이 시리겠다고 한다.
◇일부의 사생활=손현숙 지음/시인동네/127쪽/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