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은 어색한 그림과 입간판이었다. 서울 용산구 지하철 삼각지역 구내에는 벤치에 앉은 젊은 가수가 기타를 치는 동상이 있다. 그 시절엔 젊은 오빠였을 테지만 이미 눈이 내려앉은 팬들의 흰머리처럼 기억도 아련하다. 하지만 이따금씩 저음의 목소리가 나지막히 흘러나온다.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비는 오는데~~'
덕수궁 뒤편 정동길 언저리에 자리한 고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비 앞에 놓아둔 팬들의 꽃다발/사진=배성민 기자
거리에는 신해철과 함께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동상 벤치'가 있고 팬과 지인들이 남긴 추모 글과 신해철이 남긴 어록 등을 담은 대리석 블록 35개가 바닥 곳곳에 깔렸다. 대학가요제 대상밴드인 무한궤도 시절의 데뷔곡 '그대에게'를 비롯해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나에게 쓰는 편지', '민물장어의 꿈', '날아라 병아리' 등 잘 알려진 노래가 담긴 푯말도 가로수 주변에 서 있다.
성남 신해철거리에 위치한 신해철 동상/제공=성남시청
사후 20년이 지난 지난해 말 난데없이 세간을 들썩이게 했던 가수 김광석.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주된 소재였지만 그 근원에는 김광석을 잊지 못하는 팬들의 그리움이 있었다. 입대를 앞둔 젋은이들은 여전히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는 길'을 읆조리며 '이등병의 편지'를 떠올린다. 취업난, 집값에 휘둘리는 청춘들은 '또하루 멀어져간다/~~/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라고 흐느낀다.
초로의 부부들은 김광석의 절창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에 두손을 맞잡는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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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광석'이 예상밖의 관객들이 든 것도 팬들의 힘이었다.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소송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래만으로 아쉬운 이들에게는 '광석이 오빠'가 여전히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대구 중구 삼덕봉산문화길이 있다. 김광석을 그리는 사람들이 만든 짧은 골목길에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골목 입구에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광석이 오빠'가 있다.
삼각지역 구내의 가수 배호 동상/사진=배성민 기자
역을 나오면 흔적뿐인 삼각지 로터리에 그의 노래비가 있다. 1960년대 후반 차량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만들어진 삼각지 입체 교차로는 자동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오히려 교통 정체의 원인이 되었고 구조물도 노후화되어 결국 1994년 철거됐다. '떠나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하며 / 눈물 젖어 불러보는 / 외로운 사나이가 / 남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그들의 노래는 어디선가 흘러나오고=노래비와 동상은 체온이 없고 멈춰있다. 하지만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노래를 부른다. 이영훈 작곡가 10주기 헌정공연은 '작곡가 이영훈'이라는 타이틀로 펼쳐진다. 이번 공연은 오는 27일 저녁 8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며, 영훈뮤직과 케이문에프엔디가 공동 제작한다.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의 바로 그곳이다.
출연진으로는 고인과 음악 작업을 함께 했던 이문세와 한영애, 윤도현, 김범수, 전제덕, 장재인, 작곡가 김형석, 현대무용가 김설진, 뮤지컬배우 차지연 등 후배 아티스트들이 함께 한다.
대구 중구 김광석거리에 위치한 김광석 동상/제공=대구 중구청
24일 공연은 제주(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다음달 24일에는 강원도 원주에서도 김광석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4월28일에는 서울 공연이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예정돼 있다. 이영훈과 김광석 공연에는 그들의 생전에는 가수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던 알리나 장재인 같은 실력파 후배들이 다수 참여한다. 김광석의 친구인 박학기의 노래 '내 가슴속에 니가 살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널 베어낸 그 자리에 많은 눈물 흘렸지만/어느새 그 추억은 꽃으로 피어 너의 향기를 전하네/습관처럼 자꾸 널 그린다 다시 너를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