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전설·더한 그리움-이영훈·김광석 그들을 부르다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배영윤 기자 2018.02.2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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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된 스타흔적 곳곳에 남아…정동길 이영훈 노래비-대구 김광석거리-분당 신해철거리

# 그를 기리는 팬들이 정동길 한켠에 놓아둔 꽃바구니의 꽃은 몇송이가 시들어있었다. 벌써 그가 떠난지 10년이 됐다는 사실처럼 말이다. 작곡가 고(故) 이영훈 얘기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라는 '광화문 연가' 노래가사처럼.

# 조금은 어색한 그림과 입간판이었다. 서울 용산구 지하철 삼각지역 구내에는 벤치에 앉은 젊은 가수가 기타를 치는 동상이 있다. 그 시절엔 젊은 오빠였을 테지만 이미 눈이 내려앉은 팬들의 흰머리처럼 기억도 아련하다. 하지만 이따금씩 저음의 목소리가 나지막히 흘러나온다.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비는 오는데~~'
덕수궁 뒤편 정동길 언저리에 자리한 고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비 앞에 놓아둔 팬들의 꽃다발/사진=배성민 기자덕수궁 뒤편 정동길 언저리에 자리한 고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비 앞에 놓아둔 팬들의 꽃다발/사진=배성민 기자


발길 닿는 곳에 그들의 흔적이 있었다. 무심히 지나치는 이들이 많지만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의 손길에 조금은 휑뎅그런 공간(작곡가 이영훈, 가수 배호의 노래비)에 온기가 더해진다. 영원한 젊음을 노래하는 가객 김광석과 마왕이라는 별명이 가장 잘 어울리는 가수 신해철, 그들에게는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대구의 김광석 거리와 경기도 성남의 신해철 거리가 그곳.



가장 최근인 이달 8일 신해철이 생전에 곡 작업을 하던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작업실 주변에서 신해철 거리 준공식이 있었다. 2014년 말 한 시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제안을 계기로 성남시와 유족, 지역 주민이 머리를 맞대 조성사업이 추진됐고 지난해 5월 착공된 것이 9개월여만에 결실을 본 것.

거리에는 신해철과 함께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동상 벤치'가 있고 팬과 지인들이 남긴 추모 글과 신해철이 남긴 어록 등을 담은 대리석 블록 35개가 바닥 곳곳에 깔렸다. 대학가요제 대상밴드인 무한궤도 시절의 데뷔곡 '그대에게'를 비롯해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나에게 쓰는 편지', '민물장어의 꿈', '날아라 병아리' 등 잘 알려진 노래가 담긴 푯말도 가로수 주변에 서 있다.



성남 신해철거리에 위치한 신해철 동상/제공=성남시청성남 신해철거리에 위치한 신해철 동상/제공=성남시청
처음 개방된 생전의 음악 작업실인 '신해철 스튜디오'에서는 그를 추억하고 체취를 느낄 수 있도록 작업실 스피커를 통해 그의 육성과 음악이 흘러나온다. 후배가수 윤도현은 '그의 음악은 흉내낼 수 있어도 그의 스피릿을 흉내내진 못 할 것'이라고 거리 한켠에 썼다.

사후 20년이 지난 지난해 말 난데없이 세간을 들썩이게 했던 가수 김광석.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주된 소재였지만 그 근원에는 김광석을 잊지 못하는 팬들의 그리움이 있었다. 입대를 앞둔 젋은이들은 여전히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는 길'을 읆조리며 '이등병의 편지'를 떠올린다. 취업난, 집값에 휘둘리는 청춘들은 '또하루 멀어져간다/~~/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라고 흐느낀다.

초로의 부부들은 김광석의 절창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에 두손을 맞잡는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영화 '김광석'이 예상밖의 관객들이 든 것도 팬들의 힘이었다.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소송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래만으로 아쉬운 이들에게는 '광석이 오빠'가 여전히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대구 중구 삼덕봉산문화길이 있다. 김광석을 그리는 사람들이 만든 짧은 골목길에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골목 입구에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광석이 오빠'가 있다.

삼각지역 구내의 가수 배호 동상/사진=배성민 기자삼각지역 구내의 가수 배호 동상/사진=배성민 기자
삼각지역에는 배호 동상 옆에 앉아 사진을 찍는 이들이 며칠마다 두세명씩 꼭 있다고 역무원은 말했다. 가끔씩은 외국인도 있다고 했다. '외국인이 배호를 아나요'라고 묻자 그는 '한국의 K팝 유명한 가수로 생각해 사진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배호의 진짜 팬같은 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신데 만져보고 쓰다듬어보고 그러셔요."

역을 나오면 흔적뿐인 삼각지 로터리에 그의 노래비가 있다. 1960년대 후반 차량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만들어진 삼각지 입체 교차로는 자동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오히려 교통 정체의 원인이 되었고 구조물도 노후화되어 결국 1994년 철거됐다. '떠나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하며 / 눈물 젖어 불러보는 / 외로운 사나이가 / 남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그들의 노래는 어디선가 흘러나오고=노래비와 동상은 체온이 없고 멈춰있다. 하지만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노래를 부른다. 이영훈 작곡가 10주기 헌정공연은 '작곡가 이영훈'이라는 타이틀로 펼쳐진다. 이번 공연은 오는 27일 저녁 8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며, 영훈뮤직과 케이문에프엔디가 공동 제작한다.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의 바로 그곳이다.

출연진으로는 고인과 음악 작업을 함께 했던 이문세와 한영애, 윤도현, 김범수, 전제덕, 장재인, 작곡가 김형석, 현대무용가 김설진, 뮤지컬배우 차지연 등 후배 아티스트들이 함께 한다.

대구 중구 김광석거리에 위치한 김광석 동상/제공=대구 중구청대구 중구 김광석거리에 위치한 김광석 동상/제공=대구 중구청
김광석 22주기 공연으로 지난해말부터 진행되는 '김광석 다시 부르기'는 전국 순회공연으로 판을 키웠다. 이번 공연에는 김광석과 절친한 동료였던 동물원, 박학기, 유리상자, 자전거 탄 풍경, 장필순과 고인을 존경하는 박시환, 성시경, 알리, 하동균 등 후배 뮤지션들이 출연한다. 이들은 '거리에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 김광석의 대표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24일 공연은 제주(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다음달 24일에는 강원도 원주에서도 김광석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4월28일에는 서울 공연이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예정돼 있다. 이영훈과 김광석 공연에는 그들의 생전에는 가수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던 알리나 장재인 같은 실력파 후배들이 다수 참여한다. 김광석의 친구인 박학기의 노래 '내 가슴속에 니가 살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널 베어낸 그 자리에 많은 눈물 흘렸지만/어느새 그 추억은 꽃으로 피어 너의 향기를 전하네/습관처럼 자꾸 널 그린다 다시 너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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