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협회, 거래사이트 이익 대변하는 '반쪽 협회'

머니투데이 송학주 기자 2018.02.1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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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회원사 절반이 거래사이트, 블록체인 관련 사업 추진 중인 기업들은 뒷전

블록체인협회, 거래사이트 이익 대변하는 '반쪽 협회'


지난달 26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이끄는 '한국블록체인협회'(이하 협회)가 공식 출범했지만 협회 명칭과 달리 57곳에 달하는 예비회원사 중 절반에 달하는 27곳이 가상통화(암호화폐) 거래사이트로 구성돼 있어, '돈벌이'가 되는 거래사이트들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반쪽짜리 협회'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법무부나 금융위원회 등 정부 당국의 가상통화 거래사이트에 대한 압박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중심의 가상통화 규제를 협회의 자율규제 중심으로 무게 추를 이동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협회는 공식 출범 전 57곳의 예비 회원사를 받았다. 곧바로 정회원사로 등록하지 않은 이유는 협회 중심이 되는 가상통화 거래사이트들이 별다른 등록절차 없이 설립돼 무분별하게 운영되는 것과 무관치 않았다.

협회는 올 2분기 중 자율규제위원회에서 회원사에 대한 심사 세부 기준을 정해 심사를 통과한 거래사이트들만 정회원으로 인정할 방침이다. 거래사이트를 운영하지 않는 블록체인 및 IT기술 업체들은 별도의 심사를 거치지 않고 정회원 등록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협회가 거래사이트들의 이익단체임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10월 협회 발기인 총회를 할 당시만 하더라도 22개 기업중 가상통화 거래사이트는 빗썸, 코빗, 코인원, 코인플러그, 코인피아 등 5곳에 불과했다. 특히 대전시는 스마트 제로 에너지 실증단지 구현을 위해, 금천구는 스마트 시티·청소년 복지 수당 등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는 방안 검토하기 위해 특별회원으로 참여하는 등 건강한 블록체인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방향 연구 등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지난해 말 가상통화 투자 열풍이 불면서 거래사이트 한 곳의 하루 거래량이 10조원에 달할 정도로 급격히 성장하자 정부가 규제의 칼날을 꺼내 들었다. 이에 지난해 12월 협회는 거래사이트에 대한 자율규제안으로 △투자자 예치자산 보호 장치 마련 △신규 코인 상장 프로세스 강화 및 투명성 제고 △1인 1계좌 실명 입출금 관리 △오프라인 민원센터 운영 의무화 △자기자본 20억원 이상 등을 제시했다.

이후 협회가 거래사이트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현재 27곳의 가상통화 거래사이트가 예비 회원사로 등록해 놓은 상태다. 발기인 총회 당시 가입된 5곳을 비롯해 △업비트 △덱스코 △에스코인 △코인이즈 △비트팍스넷 △카이렉스 △코인링크 △이야비트 △코인제스트 △고팍스 △CPDAX △HTS코인 △비트포인트 △코인네스트 △코인에버 △코인엑스 △넥스코인 △코인마블 등이다. 서비스 출시를 준비 중인 △OK코인 △지닉스 △후오비 △플루토스디에스 등도 회원사로 신청해놨다.


특히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거래사이트는 함량 미달 업체로 인식돼 시장에서 자연 퇴출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협회 가입에 혈안이 돼 있다. 블록체인 관련 사업 추진을 모색하고 있는 △더루프 △데일리금융그룹 △아이티센 △라온시큐어 △지란지교시큐리티 △센트비 등의 회원사들이 뒷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거래사이트에 ICO 기능 부여해야"=협회 자율규제위원장으로 선임된 전하진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가 지난달 26일 창립식에서 "현재 거래사이트는 '거래 기능' 밖에 없는 영업장에 불과하다"며 "블록체인 기술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유망한 스타트업의 자금조달 창구가 돼야 한다"고 말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전 위원장은 "가상통화 거래사이트 폐쇄 방안은 블록체인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부 부처 결과물"이라면서 "거래사이트는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심장 역할을 하는 기관이며 가상통화공개(ICO) 기능을 할 수 있어야만 건전한 자금을 수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ICO를 금지하고 있는 정부 입장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다. 게다가 초대 협회장에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선임한 것도 정부의 가상통화 거래사이트 규제를 다소 완화시키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진 협회장은 삼성전자 사장과 김대중 정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노무현 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지냈고 반도체와 국내 인터넷 발전을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런 '거물'까지 영입하면서 협회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고 협회에 힘이 실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진 협회장이 현 정권과 맺고 있는 폭넓은 인맥을 활용해 정부의 가상통화 정책에 변화를 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다만 블록체인협회라고 이름만 붙였을 뿐 사실상 거래사이트 협회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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