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이재용의 삼성, 지금이 진짜 시작이다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장 2018.02.06 05:30
글자크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 353일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 부회장은 서울구치소에서 구속 1년 만의 석방 소감에서 그동안 좋은 모습 보여드리지 못한 죄송함과 앞으로 더 세심히 살피겠다는 말을 했다.

그동안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는 말은 그가 재판 과정에서 말했던 ‘승마지원’ 과정에서의 부적절해 보이는 대응 등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청문회 과정에서나 재판 과정에서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은 나중에 알고 난 뒤에 보니 적절하지 못하게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었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가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그 대목이다. 삼성이 그동안 정권의 요구에 관행적으로 대응해왔던 많은 것들이 법의 잣대로 판단할 때 문제가 없지 않았다는 것을 이 부회장 스스로 에둘러 표현한 것이기도 했다.

1심 재판부가 이번 사건을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한 정경유착 사건이라고 봐 중형을 선고한 반면, 2심 재판부는 국가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기업인을 겁박해 뇌물을 공여받은 사건으로 봤다. 사안에 대한 해석은 엇갈릴 수 있지만 어떻든 그 과정에서 기업이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 부회장 역시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정경유착 사건이나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과정에서 기업인들은 “정치권에서 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해 왔다. 하지만 이제 이런 항변으로는 면죄부를 받을 수 없는 세상이 됐다는 점을 이번 국정농단 재판을 통해서 깨우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부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라는 것은 주주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지,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도 경영권 승계를 해줄 수 없다는 말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호소를 받아들였지만, 재판부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판결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도덕적 잣대는 법률적 잣대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우리 기업을 바라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출소하면서 지난 1년간 스스로를 돌아보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했다. 경위야 어떻든 지난 1년간을 계기로 삼성이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하겠다는 선언으로 풀이된다.


아직 법률심인 대법원의 상고심 최종 판단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번 재판의 대부분의 결론은 2심에서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며, 삼성에서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년간의 과정을 통해 정치권력으로부터 기업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체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이런 일에 기업이 연루되지 않고, 경영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과감히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새 출발해야 하는 숙제가 이재용 부회장 앞에 놓여 있다.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에 전세계 IT 기업과 자동차 기업 CEO들이 참석해 4차 산업혁명기에 대비한 전략을 짜고 있을 때, 이 자리에 늘 참석했던 이 부회장의 부재는 아쉬웠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이 부회장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과거의 관행을 과감히 혁파하는 데 앞장 서고, 한국 대표 기업 삼성을 바로 세움으로써 스스로 인정받는 경영인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가 재판 과정에서 말했던 것처럼.
오동희 부국장 겸 산업1부장.오동희 부국장 겸 산업1부장.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