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부, 39년만에 무재해운동 폐기... '산재예방 패러다임 전환'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2018.01.30 04:11
글자크기

무재해 목표로 추진하는 산업재해 예방→중대사고 방지 위한 '산재 예방과정 집중' 추진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서울 강서구청 사거리 부근 한 공사장에서 이동식 크레인이 전복해 정차 중이던 650번 서울 시내버스를 덮쳤다. 긴급출동한 119 구조대원과 경찰이 사고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사진=뉴스1지난해 12월 28일 오전 서울 강서구청 사거리 부근 한 공사장에서 이동식 크레인이 전복해 정차 중이던 650번 서울 시내버스를 덮쳤다. 긴급출동한 119 구조대원과 경찰이 사고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임기말인 1979년 9월부터 시행돼 왔던 무재해 운동을 폐기한다. 무재해 운동을 민간 자율운동으로 전환하고 더 이상 정부가 손대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재해를 목표로 한 산재 예방보다 무재해 달성 과정에 초점을 맞춰 실질적인 산재 사망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고용노동부는 올해부터 무재해 인증을 요청하는 사업장에 대한 신규 인증을 중단한다고 29일 밝혔다. 예전부터 무재해운동을 해오던 사업장에 한해 오는 7월까지만 인증을 해 준다. 무재해 운동은 1979년 노동부(현 고용노동부)가 행정규칙의 일종인 예규로 시작했다.



사업체의 업종과 규모에 따라 평균적으로 재해 1건이 발생하는 기간 동안 무재해를 달성하면 정부가 인증을 해주는 것이다. 1989년부터 안전보건공단이 인증 주체를 맡고 있으며, 1997년부터는 안전보건공단 지침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까지 총 28만8937곳의 사업장이 무재해 운동을 해 총 7만9167곳이 인증을 받았다.

그동안 평균 재해 1건 발생기간 동안 무재해를 달성하면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상, 2~3배를 달성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상, 5배를 달성하면 무재해탑을 세우는 식으로 포상했다. 사업장마다 무재해 달성을 경영지표 중 하나로 삼고, 정부로부터 인증받은 사실을 자랑하기도 했다.



39년 동안 진행해온 무재해 운동은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던 산업화시기에 재해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고 재해 예방을 위한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무재해 운동이 어느새 ‘목표’가 되면서 이를 위해 산재를 은폐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특히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건설공사의 경우 PQ(입찰참가자격심사) 단계에서 산재 여부를 반영하다 보니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산재를 숨기는 일이 잦아졌다. 다른 업종에 비해 산재가 잦은 건설업종에서 오히려 산재 은폐가 더 심하게 일어났다.

이러다 보니 초기에 막을 수 있었던 사소한 사고가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로 커지는 경우가 나타났고 선진국보다 사망비율도 높았다. 한국의 2016년 전체 재해율은 0.49%였으며 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 비율)은 0.53이었다.


반면 독일의 경우 전체 재해율은 매년 2.5~3% 수준으로 한국에 비해 5~6배 높지만 사망만인율은 2014년 기준 0.16으로 한국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2014년 사고사망만인율을 발표한 OECD 15개국의 평균도 0.30 수준으로 한국에 비해 절반 가량에 불과하다.

고용부는 목표지향형 산재 예방활동인 무재해운동 대신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과정에 집중하는 새로운 지표를 개발했다. △사업주의 안전보건역량 △사업장 위험성 평가 △안전보건체계의 원활한 운영 △안전한 기계·기구의 사용 등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일반 산재가 은폐돼 더 큰 사망사고로 돌아오지 않도록 공공발주공사 PQ시 사망사고만 반영토록 하는 방안도 관계부처 및 노동계 등과 협의중이다. 이 같은 방안을 통해 2022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을 0.27까지 줄이는 게 목표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난해 9월 열린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의 주제였던 ‘비전 제로’ 역시 무재해가 목표가 아닌 안전한 근로환경 조성을 위한 장기적 프로세스를 뜻했다”며 “세계적 추세가 재해율 등 후행지표보다는 예방을 위한 선행지표에 초점을 맞추는만큼 우리나라도 결과지향적 산재예방에서 과정지향적 산재예방으로 정책의 중심을 옮겨갈 것”이라고 밝혔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