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내투어’, 가성비 너머 나의 여행을 찾아서

박희아 ize 기자 2018.01.1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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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내투어’, 가성비 너머 나의 여행을 찾아서


tvN ‘짠내투어’에서 첫날 여행을 계획한 김생민은 박명수가 초밥을 더 시켜달라고 조르자 이렇게 말한다. “그런 자기 욕구를 못 참아가지고 사람들이 파산하는 거예요.” 당연히 초밥 5개에 파산할 리는 없다. 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돈을 아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의 얼굴은 KBS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이러시면 전셋집 힘들다”고 말하던 모습과 똑같다. 김생민이야말로 이 프로그램이 원하는 대로 최소 비용 최대 성능의 효과를 내는 ‘가성비’ 위주의 여행을 계획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짠내투어’는 ‘김생민의 영수증’을 스튜디오 바깥에서,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짠내투어’에는 ‘짠내’와 함께 ‘김생민의 영수증’에 없던 ‘럭셔리’라는 상반된 개념이 존재한다. 제작진이 “‘짠내투어’만 하다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말할 정도로, ‘짠내’와 ‘럭셔리’는 결코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는 개념처럼 그려진다. 출연진들에게 제공되는 금액은 패키지여행과 배낭여행에 드는 금액을 합친 평균값이다. 얼핏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당으로 정확히 책정된 금액만으로는 여행지에서 마주친 갑작스런 악천후나 배고픔에 적절히 대응하기조차 어렵다. 이런 조건에서 갑자기 내리는 비에 500엔짜리 우비를 사려고 편의점에 간 그들의 모습 뒤로 깔리는 영화 ‘싱잉 인 더 레인’의 주제가 ‘싱잉 인 더 레인’은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하나도 로맨틱하거나 멋들어지지 않은 여행에 깔리는 멋진 음악이 ‘짠내’를 포장한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순간을 즐기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여행은 무조건 행복할 거라는 듯한 분위기다. 그리고 주어진 돈을 잘 아끼면서 출연진들에게 가장 높은 점수까지 받은 사람만이 ‘스몰 럭셔리’의 주인공이 된다.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말한 내용을 실천으로 옮기며 훗날을 기약하는 김생민과, 좋아하는 것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박나래나 박명수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것처럼 그려질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제작진의 룰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출연진들은 오히려 ‘짠내투어’의 원칙에 균열을 내게 된다. 김생민은 ‘짠내투어’를 고달픈 일정이라고 강조하는 제작진을 향해 “나는 근데 그것도 행복할 것 같다”고 말한다. 패키지를 제외한 자유 여행을 다녀온 적 없는 그에게는 여행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설렘이 고달픔보다 우선이다. 김생민의 말에 “이분의 럭셔리는 너무 스몰, 스몰하다”고 황당해하는 박나래는 다른 방식으로 ‘짠내’ 나는 예산 안에서도 자기만의 ‘럭셔리’를 추구하려 노력한다. 빠듯한 금액 안에서 미슐랭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여러분과 함께 고급스러움을 만끽하고 싶었다”고 말하며 행복해한다. 또한 정준영은 흔히 대중교통보다 비싸다고 여겨지는 렌트카를 빌린다. 하지만 그에게 이것은 자신이 원하는 여행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결정이다. 돈을 아끼느라 힘들어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짠내투어’의 출연진들은 각자의 기준으로 ‘짠내’와 ‘럭셔리’의 벽을 허무는 데에 성공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성비란 단순히 가격 대비 성능비가 아니라 가격 대비 만족도를 의미하는 것에 가까워진다.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가성비’의 영역 아래서, 이들은 서로의 기준을 관찰하게 된다. “내가 모르는 것을 체험하고, 먹고, 만나는 게 중요”하고 “여행 갈 때마다 T.P.O에 맞는 옷을 다 챙겨간다”는 박나래와 “그냥 여행을 안 한다. 숙소 인근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정준영은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사람이지만, 점차 서로의 여행 계획에 어떤 코스가 있고 무엇에 중점을 뒀는지 관심을 갖게 된다. “싼 깃발 여행만 좋아했다. 그래서 공항을 어떻게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표를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김생민을 만난 박나래는 “이거 완전 스튜핏”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생민은 박나래의 지적에 “저금하는 데는 괜찮”다고 대꾸하기도 했지만, 박나래가 데려간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 그만의 소비 방식을 은연중에 하나의 선택지로 바라보게 된다. “사람들이 왜 미식 여행을 하는지 알겠다”고 감탄하면서.



타인의 소비 기준을 이해하는 것은 상대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선택지로도 바라볼 수 있음을 뜻한다. 현지인들의 소개로 알음알음 싸고 맛있는 집을 여러 개 준비해놓은 정준영은 날씨에 따라 유연하게 식사 장소를 바꿔가며 사람들을 리드한다. 하지만 그는 다음 여행에서 박나래의 방식에 흥미를 갖고 자신도 미슐랭 레스토랑 코스를 계획한다. 물론 이런 소비 패턴이 익숙하지 않은 정준영은 계산 과정에서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경험을 통해 다른 선택지에 대한 힌트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과 경험해보지도 않고 나의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다르다. 설사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말이다. ‘짠내투어’는 영수증 너머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삶을 체험할 기회를 얻은 김생민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성비’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으면서, 여행에도 자기만의 방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여행자를 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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