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한 잔이라도 마시면 아예 운전할 생각을 않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단속에 걸릴까 걱정부터 한다. 피할 수 있다면 운전을 하겠다는 얘기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의 대표적 사례가 운전 습관이다. 앞차가 너무 늦게 가면 바짝 붙어서 빵빵거리고 뒤에서 바짝 따라붙으면 신경이 쓰여 또다시 불평을 해댄다. 역지사지는 온데간데없다.
대학교수들이 ‘파사현정’(破邪顯正)의 해로 꼽은 2017년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촛불정국을 거쳐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조기대선 등 역사적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 지난해 사람들은 운전석에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신호 위반과 법규 준수를 번갈아 외치곤 했다. 저주에 가까운 인터넷 댓글 속에 이 같은 현상은 더더욱 두드러진다. 정치·사회적으로 진보는 보수를, 보수는 진보를 적폐니 친북좌파니 하며 손가락질하지만 양쪽 모두 정작 자신이나 주변인을 둘러보면 적잖은 공통분모가 있다. 정의를 정치적 구호처럼 부르짖고 도덕군자인 양 남들을 꾸짖다가 정작 청문회에 나와 자신과 가족들이 탈탈 털리는 것을 보면 분노보다는 허탈감이 앞선다.
2018년 무술년 역시 정유년에 이은 역사적 변혁기의 연속이다. 세대교체, 책임경영, 미래성장, 혁신 등 이미 익숙한 경영방침이 신년사에서 쏟아져 나온다. 세대교체는 부의 대물림, 책임경영은 아랫사람 솎아내기 등 보기에 따라 해석도 천차만별일 수 있다.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내는 것은 올해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만이 옳다는, 도를 넘는 공격 일변도의 주장은 역공을 부른다. 운전석에선 보이지 않던 것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로 바뀌면 한눈에 보이고 다시 운전석에 오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2018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는 ‘역지사지’가 후보에라도 좀 올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