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을 총으로 쏴도 될까…해외 '정당방위' 살펴보니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방윤영 기자 2017.12.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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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당방위'는 없다-③] 美'캐슬 독트린' 등 폭넓은 범위…전문가 "완화해야"

/삽화=임종철 디자이너/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직장인 A씨(36)는 연말을 맞아 이달 7일 친구들과 서울 강남의 노래방을 찾았다가 시비에 휘말렸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남성과 어깨를 부딪혀서다. 갑작스럽게 날아온 주먹에 A씨도 어쩔수 없이 함께 대응했지만 상대방은 경찰 조사에서 쌍방폭행을 주장했다.

이 같은 연말 술자리 시비가 해외에서 발생했다면 과연 정당방위가 인정될까?



총기 소유가 합법인 미국은 각주의 형법과 개별 사건마다 차이가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맞대응을 한다면 대체로 정당방위가 인정된다.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미국 일리노이 등 16개 주는 자신의 주거지에 침입할 경우 침입자에 위해를 가해도 기소되지 않는 '캐슬 독트린' 법을 시행한다.

2015년 11월 발생한 현실판 '나홀로 집에'가 대표적 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카운티의 한 가정집에 강도 2명이 침입했다. 당시 집 안에는 13세 소년 혼자였다. 소년은 강도가 문을 따고 집에 들어오려는 것을 발견하고 집 안에 있던 산탄총을 챙겼다.



소년은 인기척이 나는 방향을 향해 총을 여러발 발사했고 놀란 강도들은 권총을 떨어뜨리며 급히 도망쳤다. 이 과정에서 강도 한 명은 총에 맞아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다른 강도 1명은 경찰에 1급 강도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강도가 사망했지만 소년은 처벌 받지 않았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15세까지 형벌을 받을 범법행위를 해도 형사책임을 지우지 않기도 하지만 캐슬 독트린 영향이 컸다. 성인이 같은 상황에 놓였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26개 주에서는 정당방위의 범위를 길거리 등 공공지역까지 확장시킨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을 시행 중이다. 총기 사용이 자유로운 사회 특성상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에서 정당방위가 폭넓게 인정되는 셈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총기 사용이 자유로워 정당방위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는 측면이 있다"며 "경찰이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총기 사용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상황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총기 사용을 하지 않는 영국에서도 정당방위 인정 범위를 넓히기 위한 법개정이 최근 이뤄졌다. 영국은 2013년 4월 형법 개정을 통해 자신의 주거지에 침입한 외부인에 대해 무기 등을 사용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형법이 침입자 혹은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는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정당방위 요건을 상대적으로 까다롭게 적용하는 독일이나 일본의 사례도 있다. 독일은 정당방위의 요건으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필요성'(부득이한 행위)을 요구한다. 여러 방어 수단 가운데 최소한의 피해를 주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도 정당방위의 성립을 위해서는 급박성, 침해의 불법성, 필요성 등을 충족해야 한다. 맨손으로 공격하는 사람에게 칼과 같은 위험한 물건을 사용해 대응한 경우 등에는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판결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가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데 소극적인 편이다.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 조문이 비슷하더라도 판결은 사회적 분위기나 판사의 재량에 달린 것"이라며 "국내 정당방위 인정이 다소 엄격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수준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사법체계에서도 정당방위를 보다 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법 조항을 개정하거나 이를 적용하는 판사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교수는 "정당방위 관련 국내 판결 대부분이 당사자가 합리적 판단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결과론적,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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