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보다 더 강력한 '내 탓이요' 일기의 치유효과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2017.11.2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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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투자노트]

외국 한 블로그에서 매일 감사할 일을 기록해 34개월간 1024개의 감사목록을 만든 사람의 경험을 읽었다. 그는 매일 감사할 일을 기록한 결과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감사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감사하니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돼 인생이 더 즐거워졌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사람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10주일간 매일 감사할 것을 쓰게 하고 한 그룹은 짜증 나거나 걱정되는 일을 쓰게 하고 한 그룹은 감정적 치우침 없이 그날 자신에게 일어난 일만 기록하게 한 결과 감사한 일을 쓴 그룹이 가장 낙관적이고 자기 인생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감사일기보다 더 강력한 '내 탓이요' 일기의 치유효과


사실 나도 매일 감사 목록을 써본 적이 있다. 2년 전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닥치며 멘탈이 붕괴 직전까지 몰렸을 때다. 하지만 불행 속에서 감사할 일을 쓰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예컨대 아들이 학교에서 말썽을 피워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학교로 불려갈 때 ‘그래도 아들이 건강한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할 일이야’라고 적는 것은 위선밖에 안 됐다.



집을 팔았더니 2년새 2억원이 올라 속상해 죽겠는데 ‘전세살이라도 살 집이 있는게 얼마나 감사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솝우화에서 먹음직한 포도가 너무 높이 달려있어 먹을 수 없게 되자 ‘저 포도는 분명 너무 실 거야’라고 스스로 위안하는 여우 꼴밖에 안 됐다.

되는 것 하나 없는 인생 가운데서 나를 구원해준 것은 감사 목록이 아니라 ‘내 탓이요’ 일기였다. 1990년대 초반에 천주교를 중심으로 ‘내 탓이요’ 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사회적으로 갈등이 심한데 각기 자기 이익만 주장하면 문제 해결이 되지 않으니 먼저 자기 잘못부터 돌아보며 반성하자는 운동이었다.



젊었던 그 때, 나는 ‘아니 문제는 다 지들이 만들어 놓고 다 니 탓이지 왜 내 탓을 하래’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학교로 불려가게 만드는 아들이 밉고 집 팔자고 부추긴 남편이 꼴 보기 싫고 심지어 내 몸 아픈 것까지 ‘남들 다 건강한데 나만 왜 이래’라는 원망이 솟구치는 중에 ‘내 탓이요’야말로 강력한 치유의 힘이 있음을 알게 됐다.

1. ‘내 탓이요’는 진정한 감사를 만든다=‘내 탓이요’ 일기는 아들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부모로서 학교에 반성문을 써서 제출하며 시작됐다. 부모 반성문을 A4 용지에 손으로 써오라 해서 속으로 욕하며 ‘아들이 잘못해 정말 죄송하다. 내가 직장 다니며 아들을 어릴 때부터 너무 방치해둔 것 같다. 좀더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지 못해 후회가 된다’ 등등의 의례적인 말들을 써내려 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들의 잘못 속에서 내 잘못을 찾아 쓰다 보니 내가 정말 잘한 것이 없고 아들한테 뭐라 나무랄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엔 눈물까지 고이며 나 같은 엄마 아래서 아들이 이만큼 자라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마음이 생겼다. 자기 안에서 문제를 찾으면 부족한 나에게 이만한 가족, 이만한 환경도 과분하게 느껴지며 감사하게 된다.


2. ‘내 탓이요’는 해결책을 스스로 찾게 해준다=학교에 제출할 반성문을 쓰다가 나와 아들의 관계를 돌아보며 요동치는 마음이 가라앉는 경험을 한 뒤로 자발적으로 ‘내 탓이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쓰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금 가장 힘든 일이나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을 기록한 뒤 그 일의 근본 원인을 내 안에서 찾는 것이다. 나의 어떤 점이 이런 문제를 만들었을까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며 써내려가다 보면 지금 겪고 있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다 마땅히 내게 일어나야 할 일로 여겨지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문제임이 인정되면 지금 이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게 된다.

3. ‘내 탓이요’는 자존감을 갖게 해준다=‘내 탓이요’ 일기를 쓰며 자신을 돌아보다 보면 자신의 잘못과 약점이 드러나 자격지심과 열등감, 자기 비하, 우울감 등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자기 문제를 보는 훈련을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결과 오히려 자존감이 회복되고 다른 사람과 관계도 좋아진다. 자신을 똑바로 보면서 처한 여건을 이해하니 남과 비교하며 교만과 열등감 사이를 오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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