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산업도 다르지 않다. 70년대 석유파동, 90년대 외환위기, 2000년대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 때마다 뿌리산업이 든든하게 버티어 주었기에 우리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자동차, 조선, 항공 등 주력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배경에도 뿌리산업이 있었다. 산의 높이만큼 깊고 멀리 뻗은 대나무 뿌리처럼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제품의 최종 품질과 가치를 결정하는 뿌리산업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온 것이다.
독일, 일본 등이 제조 강국의 지위를 굳건히 유지하는 것도 바로 이렇게 높은 수준의 뿌리기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세계시장에서의 기술경쟁력과 성장성을 기준으로 선정하는‘월드클래스300’의 지위를 얻은 266개 기업 중 46개(17%), 제조 중소기업 13만개 중 2.7만개(19.4%)가 뿌리기업이라고 하니, 이름 그대로 산업의 뿌리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뿌리산업 기본계획을 중심으로 기술역량을 강화하고 고부가가치 핵심기술을 발굴하는 등 다양한 전략으로 해결책을 내세우고 이를 실행하고 있다. 공정을 혁신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지속가능 뿌리산업 육성”을 비전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IT산업과 융합 등 새로운 시도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물론 기업이 중심이 되어 위기의식을 가지고 혁신방법을 모색하는 자구노력 또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무엇보다 근시안적인 미봉책보다는 백년대계를 세우듯 튼튼하게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대나무가 죽순을 올리려면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대나무숲이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가는 대를 솎아주는 일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빨리 결과를 보려고 서두르는 것보다는 꾸준한 투자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죽순이 “대나무 끝에서 3년 산다”는 말처럼 어려울 때일수록 인내를 가지고 뿌리를 돌봐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자신을 품은 산보다 넓고 깊게 뻗어나가는 대나무 숲처럼 뿌리산업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굳건히 뻗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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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일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