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외환위기 20년과 미완의 개혁

머니투데이 박종구 초당대 총장 2017.11.2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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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외환위기 20년과 미완의 개혁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7년 11월21일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경제주권을 상실한 것이다. 30대 재벌 중 16개사가 퇴출되고 수십만 명의 해고 근로자가 거리로 내몰렸다. 4대부문 개혁과 국민의 희생 아래 3년8개월 만에 빌린 돈을 상환해 IMF체제를 졸업했다.

외환위기 20년 그간 한국경제는 크게 발전했다. 1997년 89억달러까지 떨어졌던 외환보유액은 올 10월 현재 3845억달러에 이른다. 경상수지도 1997년 103억달러 적자에서 지난해 987억달러 흑자로 전환했다. 미셸 캉드시 전 IMF 총재 말처럼 외환위기가 ‘가장된 축복’으로 작용해 한국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동인이 되었다. G20 국가에 진입하고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같은 세계적 기업이 탄생했다. 그러나 미완의 개혁이었고 부활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 저성장은 뉴노멀이 되었고 생산인구 감소, 저출산·고령화의 쓰나미가 성장의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 중국의 추격도 매섭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한 국민 인식조사는 외환위기가 초래한 가장 큰 충격으로 비정규직 증가를 들었다. 비정규직 비율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43.2%에서 1998년 46.9% 2000년 52.1%로 급등했다가 현재는 32.9% 수준이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높은 수치다. 청년실업률도 크게 악화해 지난달 8.6%로 1999년 이래 동월 기준 가장 높은 수치다. 체감실업률은 21.7%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노동시장의 왜곡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독일은 하르츠 노동개혁으로 유럽 최저수준의 실업률을 기록한다. 프랑스 젊은 대통령 마크롱은 3300페이지 넘는 노동법규를 과감히 손질해 경제를 되살리려는 승부수를 던졌다. 게으름뱅이 냉소주의자나 극단주의자들에게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불행히도 우리의 노동개혁은 미완 상태다.



주력 제조업의 어려움이 가중된다. 반도체와 휴대폰 호황으로 착시현상이 심하다. 임금상승률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상회해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 근로자의 3.4%에 불과한 강성노조가 사실상 노동시장을 좌지우지한다. 고용세습, 호봉제로의 회귀 같은 역류현상이 심화한다. 노동생산성은 2010년 이후 계속 하락세다. 2015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1.8달러로 독일 59.8달러, 프랑스 60.6달러, 미국 62.9달러에 크게 떨어진다.

중국의 추격이 무섭다. 정부의 산업기술보고서에 따르면 24개 산업 중 17개가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가 1년 이내로 나타났다. 철강은 0.5년이고 반도체공정과 디스플레이는 1.2년이며 정보통신산업 평균은 0.5년에 불과하다. 조만간 양국의 기술격차가 사라질 판이다. 중국은 첨단 마이크로칩, 인공지능, 전기차 등 전략부문에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 인수합병, 라이센싱, 조인트벤처 등 다양한 형태로 기술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빈부격차 문제는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소득분배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08년 0.314에서 2015년 0.295 2016년 0.304로 답보상태다. 노동연구원 홍민식 박사 분석에 따르면 상위 10%의 소득집중도는 1999년 32.9%에서 2015년 48.5%로 심화했다. 중소기업의 대기업 임금 비율도 1993년 73.5%에서 지난해 54.5%로 나빠졌다. 높은 자영업자 비율도 문제다. 2015년 자영업자 비율은 21.4%로 OECD 평균 14.8%보다 월등히 높다. 독일 10.4% 일본 8.5%와 크게 대조된다.


결국 우리의 성장동력은 서비스업과 유연한 노동시장에서 찾아야 한다. 과감한 규제개혁과 시장개방으로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투자와 고용이 창출될 수 있다. 내수와 가계소비 중심 경제로의 전환도 서비스업 발전과 맥락을 같이 한다. 노동시장 개혁은 구조개혁의 시발점이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의 경기회복이 노동시장의 유연성 덕분에 가속화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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