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식에서 일자리를 가장 먼저 챙기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선의는 평가받아야 한다. 일자리 현황판이 개발독재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건 ‘상상력 빈곤’에 따른 것일 뿐 일자리 창출에 일로매진하겠다는 ‘상징으로서 가치’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그 현황판을 채우는 숫자들이다. 지난달 취업자수는 8월에 이어 또다시 30만명을 밑돌았다. 청년실업률은 8.6%로 10월 기준으론 1999년 이후 최고치였다. 인구와 추석이 원인으로 제시됐지만 그게 면피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 어느 정부든 각각의 사정이 다 있었고 집권여당도 야당 시절 그런 설명 따윈 귀담아듣지 않았다.
예컨대 ‘비정규직 제로’ 프레임이다. ‘비정규직 비중’이 현황판의 한 편을 차지하지만 안타깝게도 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인천국제공항공사조차 ‘연내 1만명 정규직화’ 약속은 실현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데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모든 공공기관과 공기업에서 일어날 일의 서막인 것이다. 그나마 공공부문은 정부가 경영평가 때 당근과 채찍 조항을 둬 정규직 전환을 독려할 수 있겠지만 ‘5년’만이 아니라 ‘5년 뒤’ 임금도 생각하는 민간기업들은 ‘비정규직 제로=전원 정규직’ 등식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민간부문의 비정규직은 일자리를 지키는 일조차 힘겨울 것이다. 이런 상황은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정부와 여당을 겨누는 칼날이 될 수 있다. 그때까지 두드러지는 성과가 없으면 스스로 만든 ‘비정규직 제로’ 프레임에 갇혀 전방위적 공격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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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역시 마찬가지다. 16.4%의 인상폭을 감당키 힘든 곳부터 ‘일자리’를 줄이는 조짐이 나타난다.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했다는 ‘서울지역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처우개선 추진위원회’가 밝힌 대로 최저임금 인상으로 전국 경비원 1만여명이 해고될 처지에 놓였다.
정부가 영세 사업장에 최저임금 인상분 9%를 보조금으로 주기로 했지만 이 역시 길어야 5년을 지속하기 힘들다. 최저임금 인상을 보전하기 위한 돈을 ‘일자리 안정자금’이라고 명명했지만 이 허튼 이름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중단하면? 일자리가 ‘불안정’해진다는 얘기가 되기에 그렇다. 계속하면? 재정이 ‘불건전’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자영업자 중 70%를 훌쩍 넘어선 ‘나 홀로 자영업자’가 더 늘어날 것이다. 종업원을 줄일수록 몸으로 때워야 하는 이들의 노동강도가 더 세지고, 근로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구조’를 그대로 두고 정치적 프레임과 그럴듯한 작명법으로 돌파하려고 해본들 일은 되지 않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프레임은 사실을 이기지 못한다. 선의의 경제적 결과는 ‘독’일수도, ‘악’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