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3일째, 잠 못 드는 포항… "집단 트라우마"

머니투데이 포항(경북)=최민지 기자, 김영상 기자, 유승목 기자 2017.11.1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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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포항 수험생들, 고사장 교체에 반대 "컨디션 조절 힘들다"

 17일 경북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도중학교 강당에 마련된 지진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아침을 맞고 있다.2017.11.17/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7일 경북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도중학교 강당에 마련된 지진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아침을 맞고 있다.2017.11.17/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앞으로 여기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집이 망가져서 돌아갈 곳이 없는데 너무 막막해요." (65세 남성 이모씨)

17일 경북 포항시 북구의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이모씨(65)는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포항 지진 발생 3일째인 이날 최대 대피소 흥해실내체육관에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씨는 "체육관 근처 아파트가 집인데 텔레비전이 바닥에 떨어지고 선반에 있던 물건 대부분도 떨어져 부서졌다"며 "상황이 정리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 같은데 언제쯤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피소 안팎으로 불안 호소… "조그만 소리 나도 놀라"



흥해실내체육관에는 약 1000명의 이재민이 머물고 있다. 전날 1층에만 모여있던 사람들은 2층까지 자리를 잡았다. 자리가 부족하니 서로 조금씩 양보해 달라는 안내 방송도 들렸다. 포항시 관계자는 "전체 이재민 수는 이날 오전 6시 기준으로 1789명"이라며 "전날 오전 11시 1536명보다 200명 넘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체육관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신적 충격 탓에 간밤에 소리를 지르는 등 심한 잠꼬대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부산 사하구에서 봉사활동을 위해 체육관에 온 원승재씨(70)는 "집을 떠나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새벽에 있었던 여진으로 주민들이 더 불안해하고 있다"며 "만난 사람들이 전부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고 있는 듯하다"고 밝혔다. 이재민 노모씨(80)는 "나이가 많아 체육관에서 자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잠은 집에서 자고 왔는데 아주 조그만 소리가 나도 지진이 일어나는 줄 알고 깜짝 놀라 깼다"며 "트라우마가 생겨 약을 먹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대피소 밖도 지진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피해가 컸던 북구 장성동, 양덕동 일대는 외부로 대피한 주민이 많은 탓에 고요했다. 양덕동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한경암씨(54)는 "예약 취소도 많이 생기고 손님도 평소보다 확실히 뜸하다"며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하긴 했지만, 아직도 불안한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지진의 위력때문인지 장성동의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는 '내진설계 1등'이라는 홍보 현수막이 크게 붙어 있었다. 해당 아파트 분양대행사 영업팀장은 "(지진 이후에) 내진설계에 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자신도) 일상으로 돌아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적응하고 있지만, '쿵' 소리만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불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물 외벽 곳곳이 떨어져 나가고 금이 갔지만 복구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인근 다세대 주택에 거주한다는 고윤채씨(60)는 "지진이 났을 당시 현관문이 틀어져 3~4시간 동안 나오지 못할 정도였다"며 "아직도 밤에는 현관문을 조금 열어두고 잔다"고 말했다. 이어 고씨는 "여진 때문에 섣불리 복구도 어려울 것 같아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험생들 "포항에서 시험치고 싶어"… 교육당국 '고심'

포항 학교들은 여전히 휴업 상태다. 휴업은 교사는 출근하되 학생들은 등교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오는 20일부터는 학교 재량껏 휴업을 결정한다. 교육부는 포항 관내 유·초·중등, 특수학교 242곳 24곳은 임시휴업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포항에서는 대대적인 학교 안전 점검이 이뤄졌다. 교육부, 행정안전부는 전날에 이어 수능 고사장으로 지정된 14개교 중 △포항고 △포항여고 △포항장성고 △대동고 등 5개교에 대한 2차 점검을 벌였다. 이와 별개로 피해가 큰 34개교에 대해서도 긴급 안전점검에 나섰다.

이에 따라 일부 고사장이 변경될 수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2차 점검을 하지 않은 고사장 9곳은 전날(16일) 점검 결과 추가 보수 등을 통해 수능을 치르는 데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안전뿐만 아니라 수험생과 학교 관계자들의 심리적 안정, 추가 여진 여부 등을 다각도로 고려해 고사장 이동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오는 21일 전까지 포항 지역 학생들에게 고사장을 안내할 계획이다.

포항 수험생들 사이에선 수능을 치르고 싶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전날 경북교육청이 포항지역 수험생 4300여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절반 이상이 "포항에 있는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고 싶다"고 답했다. 고사장까지 걸리는 이동 시간 때문에 컨디션 조절이 힘들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최지훈군(대동고 3년)은 "대구에서 시험을 본다면 넉넉잡아 아침 7시까지 맞춰가기 위해 새벽 5시에는 출발해야 한다"며 "피곤한 상태에서 시험을 보느니 지진이 나더라도 포항에서 시험을 보겠다"고 말했다. 이른 아침부터 포은중앙도서관에 나와 공부하던 이두언군(대동고 3년)은 "포항에서도 피해가 없는 중학교 등 다양한 시설을 이용한다면 포항 안에서 수능을 치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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