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서서히 드러나는 무리한 블라인드채용의 그늘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2017.11.13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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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전형 피하기 위한 각종 회피법 전파…文 대통령 지시 따른 성급한 제도도입이 원인

[기자수첩]서서히 드러나는 무리한 블라인드채용의 그늘


20대 남성 A는 최근 한 공공기관 채용 면접장에서 두 번 놀랐다. 필기시험을 봤던 이들이 대부분 면접까지 본 데 우선 놀랐다. 블라인드인 필기시험은 요식행위였던 것이다. 그는 면접관 모두가 자신의 출신 학교와 경력을 모두 알고 있어 또 한번 놀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공무원과 공공부문 채용 때 지원자의 인적사항과 스펙을 가리고 실력으로만 선발하는 ‘블라인드 채용’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지 5달이 지났지만 322개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에선 계속 잡음이 난다.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7~9월 블라인드채용을 진행한 127개 기관 중 22곳은 정부의 블라인드채용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았다. 사진은 기본이고, 출신학교를 쓰라고 한 기관도 부지기수다.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기 전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와 의견을 교환한 기관은 322개 중 15곳에 불과했다.

블라인드 채용 형식을 갖췄으나 사실상 무력화시킨 경우도 많았다. 앞의 사례처럼 지원자의 스펙을 볼 수 없도록 한 서류, 필기 전형에서는 대부분의 지원자를 붙여 주고, 스펙을 확인할 수 있는 면접 전형에서 걸러 내는 방식이다. 스펙에 의존해 뽑던 관행이나 시스템을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없어 생긴 일이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급하게 도입한 게 무리였다는 지적도 있다. 문 대통령이 블라인드 채용 확대를 지시한 건 지난 6월 22일. 관계부처 합동 추진 방안은 13일 만에 마련되고 그로부터 7일 뒤 가이드라인이 배포됐다. 332개 공공기관의 채용 방식을 20일 만에 확 바꾼 것이다.

채용 과정에서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평등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에 반대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다만 성급히 제도를 도입하는 통에 구직자나, 각 기관의 인사담당자들 모두 불편해진 꼴이 됐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필요한 것은 스펙을 보지 않고 뽑을 수 있는 정확한 전형방법을 개발하고, 공공기관 내외부의 면접관들에 대한 소양 교육을 강화하는 일이다. 경영평가시 불이익이나 가점을 주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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