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찬가지로 산업의 ‘결핍’ 역시 산업의 ‘종속’을 뜻한다. 중국이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보복을 하면서도 메모리 수입을 끊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한 기업이나 특정 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문제는 한 산업의 결핍에 따른 ‘국익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2002년 하이닉스 이사회가 마이크론 매각안을 부결하며 정부와 채권단의 방침에 맞서지 않았다면 SK하이닉스는 사라졌고 반도체 강국의 위상도 지금만 못했을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원전산업의 존폐를 따져보면 답은 명확하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과 함께 몇 안 되는 세계적 수준의 산업을 공약이라고 해서 ‘선언’ 한 마디로 간단하게 ‘제로’로 만들 수는 없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원전의 안전성과 완성도를 최고로 끌어올리는 것이며 동시에 거대규모의 원전시장이 열리는 것에 대비해 수출전략을 짜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간을 두고 각 에너지원의 장단점을 에너지 안보와 안전성, 환경성, 경제성 등 여러 측면에서 따져 보고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도출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세계원자력협회(WNA) 등에 따르면 2030년까지 원전시장 규모는 적으면 300조원, 많으면 600조원을 넘는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까지 원전을 짓는다. 한국이 들어갈 곳이 제한적이라고 해도 그 모든 시장을 포기할 까닭은 없다. 한국형 원전의 유럽수출형 모델(EU-APR)은 유럽사업자요건 인증까지 받아 영국, 체코 등에 수출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이 기회를 방기하면 중국이나 러시아 등이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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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5·6호기가 2082년까지 가동되므로 탈원전은 먼 미래 일이라고 주장하나 새 원전을 짓지 않고 수출 일거리가 없다면 곧장 원전산업의 몰락이 시작된다. 투자와 연구·개발은 중단되고 일감이 없어 부품업체부터 도산할 것이다. 기존 원전의 유지·보수가 불가능해지면 그때 원전도 멈춰야 한다. 원전산업의 고급인력은 유출되거나 사장되고 한 번 파괴된 원전 생태계는 복원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