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까지 가평 주민 발 묶은 ‘父子의 재즈화음’

머니투데이 가평(경기)=김고금평 기자 2017.10.2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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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21일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가평읍 무대 울프&에릭 바케니우스 협연

21일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가평 읍에서 열린 울프 바케니우스(왼쪽)와 에릭 바케니우스 무대. /사진=김고금평 기자<br>
21일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가평 읍에서 열린 울프 바케니우스(왼쪽)와 에릭 바케니우스 무대. /사진=김고금평 기자


21일 오후 10시 30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사무소 바로 앞에 마련된 간이 무대에 마을 주민 100여 명이 모였다. 외지에서 온 관람객은 주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의 중심 무대인 자라섬에 머무른 반면, 마을 주민은 집과 가까운 이곳에 발길을 고정했다.

“무슨 공연인지 볼까”하는 작은 호기심으로 모인 주민들이 꽤 많았다. 공연 시작 전, 인재진 페스티벌 총감독이 이곳을 느닷없이 찾았다. 인 감독은 “이 늦은 시간에 이 무대를 찾은 여러분들은 진짜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라며 “정말 대단한 음악가”라고 이들을 소개했다.



무대 주인공은 스웨덴 출신 재즈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와 그의 아들 에릭 바케니우스. 가평 주민은 이 낯선 이름에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인 감독이 메인 무대보다 이곳을 특별히 찾은 것은 그와 무대 주인공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인 감독의 부인인 재즈보컬리스트 나윤선이 음반과 투어에서 늘 함께하는 이가 울프 바케니우스이고, 인 감독은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았다. 나윤선은 바케니우스와 듀엣으로 한국에서 여러 번 공연하기도 했다. 인 감독은 “우리 ‘아리랑’을 세계에 열심히 전파할 정도로 한국을 좋아하는 뮤지션”이라고 소개를 마쳤다.



인 감독, 나윤선, 울프 바케니우스로 이어지는 속사정을 모르는 관객은 무대 하나로 그들을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부자(父子)의 협연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버지는 주요 선율을 이끌고, 아들이 리듬을 받쳐주는 식이었는데,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으로 만들어진 앙상블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부자의 스타일은 비슷했다.

나윤선의 음반이나 공연에서 이미 확인됐듯, 울프는 16분음표로 잘게 쪼개진 음 하나하나를 정확히 연주할 뿐 아니라, 그 속주나 기교가 표현 예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듯 화려하고 풍부한 사운드를 선보였다.


에릭은 첫 두 곡에서 잠시 아버지의 능력에 숨죽어 있는 듯하더니, 이내 솔로 자리를 꿰차며 내달렸다. 간혹 안정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보컬리스트의 자질도 드러냈다.

특히 나윤선의 8집 수록곡 ‘momento magico’를 연주할 땐, 재즈를 잘 모르는 주민도 곡 제목처럼 ‘마법의 순간’에 이끌려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환호했다. 단 두 대만으로 엮은 기타 선율은 때론 나지막이 속삭이는 귓속말처럼 다가오다, 어느새 오케스트레이션의 풍부한 사운드로 바뀌기 일쑤였다.

난해하거나 낯설 것이라는 재즈의 선입견은 이 무대에선 완전히 사라졌다. 그들은 재즈를 들은 것이 아니라 음악을 즐기고 있었던 셈이다. 이 황홀한 무대는 엔딩 신에서 더 극적으로 표현됐는데, 곡을 ‘페이드 아웃’(화면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장면이 바뀌는 것) 기법처럼 연주 막바지에 기타 잭을 뽑으며 퇴장하는 모습이 그랬다.

시작부터 끝까지 인상적인 장면에 도취한 관객은 밤 12시가 다가오는 시간까지도 플래시 세례를 멈출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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