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시민들 "우리가 바꾼 삶·바꿀 미래는…"

머니투데이 박종진 사건팀장, 진달래 기자, 이동우 기자, 방윤영 기자, 김민중 기자, 이보라 기자 2017.10.23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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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년] 촛불 시민들이 본 1년, 희망과 숙제

벌써 1년이다. 시민들은 지난 가을, 겨울, 봄 134일간 20차례(탄핵 결정 직후 기준) 주말을 반납해 역사를 새로 썼다. 은폐된 진실을 밝히고 불통의 사회를 녹이고자 들었던 촛불은 대통령을 갈아치웠다.

다시 가을이다. 1년간 벌어진 기막힌 역전은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콧방귀도 안 뀌던 권력기관장이 허리를 굽혀 사과하고, 철옹성 같던 정책이 졸지에 진상조사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대반전이 연일 펼쳐진다.



소통과 참여, 여러 직접 민주주의적 시도가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키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광장의 경험이 토론과 상생의 문화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1년은 짧고 급박했다. 사회 곳곳에 박혔던 비합리와 병폐는 여전히 뿌리가 깊다. 한반도를 둘러싼 북핵 위기 등 국제정세와 통상 압박 등 경제상황은 엄중해졌다.



시민들의 감회도 복잡다단하다. 풀어야 할 과제도, 청산해야 할 적폐도 많고 그 과정에서 놓쳐선 안되는 분야도 적잖다. 일상으로 돌아간 촛불 시민들이 말하는 희망, 그리고 숙제를 들어봤다.

◇'정치' 되찾은 2030, '헬조선' 해결할 희망 본다

'헬조선'(지옥과 조선의 합성어, 우리나라 현실을 비관적으로 빗댐)이란 신조어 속에 살아왔던 젊은 층이 느끼는 촛불 1년은 남달랐다.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촛불집회를 이끌었던 최준호씨(19·전 중고생연대 대표)는 "정권이 교체되는 것을 지켜보며 청년으로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더 이상 정치에 무관심하지도 않다. 최씨는 "만 18세 선거권 등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신장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직장인 윤미영씨(30·여)도 촛불집회 1년을 돌아보며 20, 30대의 정치적 인식이 높아진 점을 가장 긍정적인 부분으로 꼽았다. 윤씨는 "예전에는 정치에 관심 없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아니다"며 "집회가 축제가 되고 정치가 시민 속으로 들어 온 경험이 나 자신의 인식도 바꿔놨다"고 말했다.

대학생 조민지씨(20·여)는 "촛불집회를 계기로 지난 1년간 기성세대와 동질감을 느끼게 됐다는 점이 새롭다"고 밝혔다. 민주화운동과 같은 정치·사회적 격변을 겪은 기성세대와 세대차이가 좁혀졌다는 얘기다.

풀어야 할 숙제로 우리 사회에 여전한 갈등관계를 꼽는 시민들도 상당하다. 직장인 김주용씨(32)는 촛불집회와 반대집회가 세대갈등 양상으로 번졌던 사례를 들며 "상대를 존중하고 대화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일자리가 최대 화두인 가운데 취업준비생들에게 희망은 절실하다. 기업체 취업을 준비하는 배지훈씨(28)는 "촛불집회 경험으로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는 진취적 태도를 갖게 됐다"며 "새 정부도 정책 지원 등 청년 취업에 관심을 더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씨는 "다만 과로가 만연돼 있는 노동문화, 취업준비생들에 대한 '갑질' 등 정부와 기업이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고 말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4050 중장년층, "안전·안보·민생에 우리 사회 역량 모아야"

중장년층들은 국민 안전과 안보, 민생경제 분야에서 시민들의 지혜와 힘을 모으는 촛불을 이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5살짜리 딸을 키우는 전재희씨(42·여)는 "여전히 안전불감증 문제는 심각해 보인다"며 "아직은 아이들을 수학여행에 마음 편히 보내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안보도 불안요소다. 전씨는 "최대한 빨리 적폐청산을 마무리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중소 자영업자들은 마음 편히 장사하길 원한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서 천연염색 옷을 판매하는 김영리씨(49·여)는 "건물주들이 임차 상인들을 상대로 갑질하고 법의 허점을 이용해 부당하게 내쫓는 일들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길 바라는 상인들이 상당하다.

청소노동자 배옥식씨(57)는 "공정한 분배가 실현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기대한다"며 "양극화가 해소되고 국제노동기구(ILO) 제시 수준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고령층 "어떤 사회 물려줄까…앞으로 더 중요해"

촛불집회는 고령층에게도 새 경험이었다. 젊은 세대에게 물려줄 이 사회의 미래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게 나라냐'는 울분에 촛불을 들었던 직장인 장병수씨(60)는 "예전에는 대통령 눈도 못 쳐다보는 시대였지만 이제는 다르다"며 "갈 길이 멀지만 국민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나라를 계속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로 살아온 허순자씨(67·여)에게 촛불집회는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기회였다. 경북 고령이 고향인 허씨는 촛불 이전까지 보수 쪽 생각만 듣고 받아들여왔다.

허씨는 "아들 따라 나갔던 광화문 광장의 경험은 새로웠고 깨어 있는 젊은 이들의 생각은 신선했다"며 나이 든 세대도 청년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된 것을 촛불 1년의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정치권이 국민의 변화를 못 따라온다는 비판도 나왔다. 허씨는 "국회의 변화는 아직 많이 느리다"며 "더 이상 '반대를 위한 반대'는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를 개근했던 맹행일씨(75)는 공동체 문화의 복원을 촛불 1년의 성과로 꼽았다. 맹씨는 "노인들 5~6명이 서로 격려하며 집회 참여를 하다가 탄핵이 됐을 때 춤을 추고 막걸리를 마시며 자축했다"며 "세계사에 유례없는 평화집회로 대한민국의 공동체 문화를 다시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변화와 혁신은 계속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맹씨는 "당시 촛불집회에서는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가 분출됐다"며 "현재 국회에서 진행되는 상황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계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반영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에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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