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 LG하우시스 중앙연구소 선임/사진제공=LG하우시스
김 선임은 LG하우시스에선 알아주는 ‘예술가’다. 몇 해 전 취미로 쓴 수필을 재미삼아 공모전에 투고했는데 금상과 100만원의 상금을 받았고 그다음으로 쓴 스릴러 소설은 한 온라인서점이 주최한 공모전에서 우수상으로 선정됐다.
야근과 회식을 숙명처럼 여기는 한국 기업의 평범한 직장인이 어떻게 ‘저녁이 있는 삶’을 살며 일과 취미를 양립할 수 있었을까. 사실 김 선임도 한국에서 이런 ‘꿈같은’ 직장생활이 가능할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았단다.
“LG하우시스에서는 연구원의 삶과 개인의 삶을 구분하는 문화가 정립돼 있어요. 연구원으로서 낮 8시간을 충실히 보낸 뒤 퇴근 후엔 오롯이 인간 김준혁으로서 개인적인 5시간을 살 수 있는 거죠.”
물론 이를 위해 김 선임 스스로도 부단히 노력한다. 근무시간에는 직장인들이 ‘낙’으로 삼는 그 흔한 웹서핑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일에 집중해 근무시간 내 최대한 일을 마치려 노력한다. 취미에 정신 팔려 업무성과가 떨어진다는 괜한 의심을 사고 싶지 않아서다. 이런 회사 분위기와 개인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김 선임에게 글쓰기는 없는 시간을 쪼개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일과 함께 평생을 두고 즐길 수 있는 취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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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임은 글쓰기가 주거공간을 연구하는 자신의 직업과 닮았다고 말한다. 둘 다 백지에서 시작하고, 그 속에 인간의 삶이 녹아있으며, 수많은 인과관계로 빽빽이 채워진다는 점에서 그렇단다.
“공간을 설계하고 쾌적함을 연구해가는 일은 결국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수필과 소설, 시나리오는 그런 욕망에서 시작된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를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 바탕을 둔 공간설계는 결과적으로 제가 쓰는 글에도 녹아들기 마련이더군요. 이 2가지가 서로 완충작용을 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거죠.”
김 선임은 현재 나쁜 공간, 암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그러기 위해 그는 오늘도 더 열심히 일을 한다. 더 좋은 공간을 연구하는 그의 일은 역설적으로 나쁜 공간에 대한 이해를 수반하며 지금 쓰는 시나리오에 더 풍부한 글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란다.
“언젠가는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손에 쥐고 뤼미에르극장 무대에 서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는 것이 제 인생 최대 목표입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경험이 될 것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