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비리 백과사전, 사상최초 '재건축 백서' 보니…

머니투데이 김민중 기자 2017.10.18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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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적폐 재건축비리 ①-2]서울 서대문구, ‘철거왕 이금열’ 사업장 집중분석

[단독]비리 백과사전, 사상최초 '재건축 백서' 보니…


한 지방자치단체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재건축(재개발 포함) 비리 백서’를 만들었다. 서울 서대문구가 '철거왕 이금열' 사건의 사업장을 집중 분석했다. 당시 수사로 밝혀진 비리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17일 서대문구와 건설 업계에 따르면 서대문구는 2015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가재울뉴타운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가재울4) 추진현황 분석’ 자료(약 400쪽 분량)를 제작했다. 가재울4는 수년 전 ‘철거왕 이금열’ 사건의 무대였다.



전국의 관련 사업장들이 거의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만큼 구청은 가재울4 한 곳을 철저히 분석해 반면교사 삼기로 했다.

가재울4는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철거왕 이금열’ 사건(1000억원대 횡령·배임·뇌물공여 등)의 주 무대로 서대문구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비리가 가장 심각했던 현장 중 하나다. 이금열 다원그룹 회장은 2015년 1월 징역 5년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다.



◇'비리 백과사전' 백서, 돌연 비공개로…왜?

백서 프로젝트는 2015년 10월 문석진 구청장의 지시로 시작됐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문 구청장은 재건축 전문가로 꼽힌다. 구청 공무원들과 외부 전문가 등이 백서 제작에 참여했다.

당초 구청은 백서를 외부에 공개할 예정이었다. 다른 사업장에서 백서를 참고해 비리를 막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였다. 구청 내에는 ‘우리가 아무도 하지 못한 큰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한때 백서를 다른 주요 지자체에 보낼 목적으로 서울시에 특별예산을 신청하고 언론에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할지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서대문구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백서를 공개하지 않고 내부용으로만 쓰기로 결정했다. 백서 공개에 따른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백서 내용(사실관계 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며 “지난해 1월 이후의 사업진행에 대한 분석이 빠져 있는 탓에 비공개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조합에 점검 등을 나갈 때 백서를 참고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단독]비리 백과사전, 사상최초 '재건축 백서' 보니…
◇가재울4, 17가지 용역계약 100% 비리…재수사 불가피 전망

본지가 백서를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비리 실태는 상상 이상이었다. 가재울4 조합이 시공사(대형건설사), 협력업체와 맺은 17가지 유형의 계약들에 빠짐없이 크고 작은 비리 혐의가 존재했다. 일부 조합 집행부와 업체가 짬짜미해 부당하게 공사비를 늘리고 배를 불리는 사이 일반 조합원들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전반적으로 계약금액의 산출근거가 부실하다고 지적됐다. 용역비가 부풀려 지급됐는지, 불필요한 용역 계약을 맺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이야기다.

사업비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시공비에 대해 백서는 “대형건설사들이 처음에는 각종 달콤한 조건(세대당 이사비용 100만원 제공 등)을 제시해 놓고 일감을 딴 뒤에는 최초 제안했던 공사비가 올라가고 계약 내용이 대형건설사들에 유리하도록 변경됐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평당 시공비는 2006년 6월 가계약 때만 해도 약 329만원이었지만 2007년 10월 본계약 때 360만원, 2012년 8월 변경계약 367만원(총 시공비 7900억원가량)으로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이사비용을 제공하겠다는 등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시공비만 올라갔다고 백서는 밝혔다.

또 변경계약 때 대형건설사의 업무영역이던 토목공사(공사비 약 680억원) 대부분이 제외됐는데도 시공비는 되레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형건설사 입장에서는 일은 덜하고 돈은 더 받은 셈이다.

더 심각한 건 제외된 토목공사를 조합이 다른 협력업체에 발주했는데도 해당 금액을 대형건설사 몫(시공비 항목)에서 빼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백서는 지적했다.

시공 관련 문제 외에도 백서는 “가재울4 조합은 불필요한 계약을 다수 체결했다”고 평가했다. 철거가 대표적인데 ‘지장물 철거’ 용역 하나만 발주하면 될 일을 지장물 철거, 전기 철거, 가스 철거, 수도관 철거로 중복 계약했다고 밝혔다. 수도관 철거만 보면 같은 이름으로 총 4차례 계약했다. 철거면적을 부풀려 용역비를 30억원가량 올린 의혹도 있다.

백서는 “조합의 의사결정 절차도 문제가 있어 잘못된 용역계약을 막을 수 없었다”고 봤다. 특히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총회(총 21회)가 전부 조합원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매회 용역 계약 안건을 처리하면서 계약서와 같은 판단근거를 제공하지 않는 등의 수법을 썼다.

매 총회마다 조합 집행부 등에 고용된 ‘OS요원’(홍보요원)들이 총회에 불참한 조합원들을 찾아다니며 특정 의사를 나타내도록 현혹하는 행위도 만연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재울4는 서울 서대문경찰서와 서울서부지검, 수원지검으로부터 돌아가며 수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당시 다뤄진 혐의는 백서에 담긴 비리 정황의 극히 일부분이다. 재수사 혹은 추가 수사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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