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은행이 없어져부렀어야"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2017.10.1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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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보는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17년째 KB국민은행과 거래하고 있다. 월급계좌도, 신용카드도, 마이너스통장도, 적립식펀드 계좌도 KB다. 최근 마이너스통장을 갈아탈까 고민 중이다. 카카오뱅크(이하 카뱅)가 나오고 나서다. 대출금리가 최저 2.98%(지금은 최저 금리가 3.04%로 올랐다)라는 말에 카뱅에 계좌를 트고 마이너스대출 한도와 금리를 조회했더니 한도는 국민은행보다 작았지만 금리는 확실히 더 낮았다.

'이자를 아낄 수 있겠구나'라는 기쁨과 '17년 거래한 은행이, 생전 처음 거래를 신청하려는 은행보다 나를 더 대우해주지 않는다'는 실망이 교차했다. 얼마전 얘기를 나눈 금융당국의 임원도 카뱅 출범 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핀테크'(금융과 기술의 결합)의 발전은 내게 이자절감의 기회를 만들어줬다.



#광주에 살고 계신 어머니는 얼마전 수십년간 거래해 왔던 광주은행을 버렸다. 나처럼 광주은행에 실망해서? 아니다.

"큰 길 옆에 있던 광주은행 지점이 없어져부렀어야." 어머니가 광주은행을 버린 이유다. 대신 나란히 옆에 붙어 있던 우체국에 계좌를 새로 개설하셨다. 어머니는 그렇게 반강제로 주거래은행을 바꿨다. 어찌보면 은행이 어머니 같은 고객을 버린건지 모르겠다. 광역시에 살고 있는 어머니도 이 정도일진데 더 작은 도시, 시골에 있는 노인들은 어떨까. 모바일뱅킹은커녕 인터넷뱅킹도 할 줄 모르는 노인들에게 은행 선택의 기준은 금리도, 서비스도 아닌 '거리'다.



#2012년말 7698개였던 국내 은행들의 지점(출장소 포함)은 올 6월말 6989개로 700개 줄었다. KEB하나은행 지점수가 800개 정도니 대형은행 하나가 사라진 효과다. 은행들로선 지점을 축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자동화기기로 은행 거래를 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입출금과 자금이체 거래시 창구를 이용한 비중은 10.6%(2017년 6월, 한국은행 자료)에 불과하다.
김진형 금융부 차장김진형 금융부 차장


디지털금융의 진화는 대세다. 아예 지점이 하나도 없는 인터넷전문은행까지 출범했다. 창구를 이용하지 않는 고객은 늘어나고 은행들은 지점을 계속 줄일 것이다. 디지털에 친숙한 노인들도 적지 않겠지만 대다수의 우리 부모 세대는 디지털금융에 있어선 문맹에 가깝다. 지점이 계속 사라지는 사이 우리의 어머니들은 근처 은행으로 계좌를 옮기고 그래도 없으면 버스를 타야 할 것이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금융 소외계층에 대한 금융서비스 접근성을 높이자는 취지의 '금융포용성'(Financial Inclusion)이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의 금융정책인 '포용적 금융'도 여기서 나왔다. 핀테크로 대표되는 혁신금융을 장려하는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금융포용성에 얼마나 힘을 쏟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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