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구관이 명관?…출구 먼 BOJ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2017.10.08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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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오르는 중앙은행 체스게임-中]아베 '조기총선' 카드 경제 역풍 우려도

편집자주 세계 주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향방이 지도부 개편 변수를 만나 더 불투명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적극 대응했던 중앙은행 수장들의 임기가 하나둘 끝나가면서 정책의 연속성이 끊겨 세계 경제·금융 지형에 파란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일본은행(BOJ), 유럽중앙은행(ECB) 순서로 각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및 지도부 개편 움직임, 전망 등을 총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은행(BOJ) 본점/AFPBBNews=뉴스1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은행(BOJ) 본점/AFPBBNews=뉴스1


일본은행(BOJ)은 다른 주요 중앙은행보다 더 강력한 경기부양 정책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때 BOJ도 곧 통화긴축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최근에는 경기부양 기조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유럽처럼 깜짝 놀랄 만한 성장세가 나타나지 않은 가운데 정치가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BOJ는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추고 10년 만기 국채 금리를 0%로 유도한다는 방침 아래 연간 80조 엔 규모의 자산을 매입하는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가 내건 목표는 단 하나다. 물가상승률을 2%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는 2013년 4월 취임 후 처음 주재한 금융정책결정회의를 통해 양적완화 공세를 시작했다. 이 때 그는 2년 안에 물가상승률을 2%로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디플레이션(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현상) 탈출'을 공약으로 내걸고 2012년 말 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의 재정부양책을 통화부양책으로 뒷받침했다.

문제는 구로다 총재가 내년 4월에 끝나는 임기 중에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게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BOJ는 지난 7월 물가상승률 2% 달성 시한을 '2018년쯤'에서 '2019년쯤'으로 늦췄다. BOJ는 무려 7번이나 시한을 미뤘다. 전문가들은 BOJ가 이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 9월 12일 발표한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에서 비관적인 응답이 90%가 넘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8월에 0.7%(전년대비)에 불과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AFPBBNews=뉴스1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AFPBBNews=뉴스1
이쯤 되면 구로다 총재가 제 임기를 모두 채우는 것만도 신통해 보인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한동안 '양치기 소년'이 된 구로다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아베 총리의 경제 고문인 나카하라 노부유키 전 BOJ 정책위원은 BOJ가 내년에 새 총재 아래 통화정책을 전면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전 세계적인 긴축 행보에서 뒤처지면 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에는 전문가들 사이에 오히려 구로다가 연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아베 총리의 경제 자문역(내각관방참여)인 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는 최근 니혼게이자이 회견에서 구로다 연임론에 힘을 보탰다. 하마다 교수는 "일본의 고용과 생산이 안정된 만큼 구로다 총재의 연임론이 불거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하마다 교수는 물가상승률을 2%로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생산시장이 활기를 되찾은 게 더 중요하다며 '아베노믹스'는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구로다 총재도 최근 한 간담회에서 물가상승률을 높이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며 지난 몇 년 동안 고용과 개인소비가 회복됐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최근 일련의 발언에서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출구전략을 추진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적절한 통화부양 조치를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조기 총선이 BOJ의 통화긴축 시기를 뒤로 더 미루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예상대로라면 구로다 총재의 연임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9월 28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10월 22일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그는 2019년 10월에 예정한 2차 소비세율 인상(8→10%)을 단행해 늘어난 세수를 교육 무상화 등을 위한 재원으로 쓴다는 방침이다. 1차 때도 그랬지만 소비세율 인상은 소비를 냉각시켜 미약한 일본 경제를 다시 침체로 몰아넣기 쉽다. BOJ는 2014년 1차 소비세율 인상이 경기침체를 일으키자 양적완화를 확대하고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비단 소비세율 인상 문제가 아니라도 일본의 조기 총선이 이 나라에 절실한 구조개혁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선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구조개혁이 미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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