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앱에 '20대 여성'으로 가입했더니, 20분만에…

머니투데이 방윤영 기자 2017.09.2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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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범죄통로 변질, 채팅앱 운영자 제재해야"…정춘숙 의원 "아청법 개정할 것"

/삽화=김현정 디자이너/삽화=김현정 디자이너


"위치랑 조건 알려주세요. 간단한 스펙(신체 조건)도요."

20일 오후 3시쯤 기자가 채팅 앱(애플리케이션) 'OO톡'에 가입하자마자 받은 메시지 내용이다.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조건만남을 제안했다.

평일 일과 시간이었지만 고작 20분 만에 쪽지 15통이 쏟아졌다. 성매매 대가로 11만원을 제안하는 등 노골적으로 조건만남을 요청했다. 해당 앱에 올라온 게시글 역시 '지금 만나자', '용돈이 필요하다', '외롭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 같은 게시글은 잠깐 지켜본 8분 동안만 100건이 넘게 쏟아졌다.



현재 채팅 앱은 각종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사실상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은밀히 이뤄지던 성매매나 마약 범죄를 활발히 연결하는 '오픈 마켓'처럼 된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아동·청소년 성매매 환경 및 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성년자들이 처음 성매매를 한 방식은 '스마트폰 채팅 앱'이 59.2%로 가장 많았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마약류 사범은 전년 대비 20% 증가했는데 인터넷·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발달과 활용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고 대검찰청은 밝혔다.



채팅 앱은 대부분 성인인증은 고사하고 본인 인증 절차도 없이 손쉽게 가입할 수 있다. 성매매나 마약 등을 암시하는 닉네임이나 채팅방 이름 등을 차단하거나 금칙어로 제한하는 곳도 없다. 또 상대방이 채팅방을 나가면 대화 내용이 모두 사라져 증거를 남기지도 않는다. 아동·청소년도 손쉽게 채팅 앱에 가입해 각종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채팅 앱을 규제할 방법은 없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유통하는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를 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해 이루어지는 성매매 알선 등에 대해서는 서비스 제공자를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채팅 앱 운영이 아청법상 성매매 알선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어 규제 법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문제가 되는 채팅 앱을 보면 성매매를 권유하는 게시글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사실상 성매매 알선 창구"라고 말했다.

이어 "성매매 광고로 뒤덮여 있다는 점, 수사기관 신고를 막기 위해 채팅방 화면 캡처를 막기도 한다는 점 등이 근거"라고 밝혔다.

배수진 법무법인 천지인 변호사는 "서비스 운영자가 채팅 앱이 성매매 등 범죄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운영자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이 채팅 앱을 악용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모니터링밖에 없다. 온라인에서 음란·유해 등 불법 정보를 발견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삭제 처리를 요청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다.

심의·시정요구를 접수 받아 처리하는 방심위에서도 관련 법이 없어 모든 내용을 삭제 조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채팅 앱 자체가 '조건만남' 등 불법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규제 가능하지만 겉으로는 건전한 앱을 표방하고 있다"며 "조건만남을 암시하는 글만으로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국회가 나서고 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말부터 채팅 앱 규제를 위한 아청법 개정을 준비 중이다. 채팅 앱 운영자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골자다. 개정안에는 △성매매·음란 정보 등을 발견하면 이용자들이 신고할 수 있도록 시스템 개선 △불법 사항 발견 즉시 문제가 된 이용자 차단 △수사 기관에 신고 의무 △성인·본인인증 절차 마련 등이 담길 전망이다.

정 의원은 "채팅 앱 운영자는 대화 내용을 삭제하는 등 교묘히 수사망을 피해가고 있다"며 "법망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조만간 아청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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