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노치' 끊어낸 이사회…KB의 'CEO 트라우마' 깼다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2017.09.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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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갈등·반목 흑역사 극복의 계기 마련…이사회 '역할' 주목 "안정적 지배구조 시스템 첫 작동"

'관치·노치' 끊어낸 이사회…KB의 'CEO 트라우마' 깼다


"KB금융에 와서 임직원들을 만나보니 지배구조에 대한 '트라우마'가 많이 있더라."(최영휘 KB금융지주 사외이사)

KB금융 확대 지배구조위원회(확대위) 의장으로 차기 회장 선임을 주도한 최 이사는 지난 14일 윤종규 현 회장의 사실상 연임 결정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정부 지분이 전혀없는 완전 민간 금융회사지만 2008년 KB금융지주 출범 후 매번 반복됐던 '낙하산' 인사와 지주 회장과 은행장간 반목과 갈등이 조직문화까지 훼손했다는 진단이다.

확대위는 노조의 윤 회장 연임 반대에도 불구하고 3명의 최종 후보군에 현재 KB금융에 몸담고 있는 내부 인사만 추천해 사실상 윤 회장의 연임을 이끌어 냈다. 이로써 KB금융이 CEO(최고경영자)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뒷배' 없이 경영능력과 성과만으로 인정 받은 CEO는 지금까지 KB금융이 거의 누려보지 못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관치(官治)'와 '노치(勞治)'를 끊어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KB금융의 CEO 트라우마는 지주사 출범 이전부터 반복돼 왔다. 2007년 통합 3기 은행장 선출을 앞두고 강정원 행장과 2인자였던 김기홍 수석부행장이 맞붙었고 지주사 출범 후에는 예상을 깨고 초대 회장이 된 황영기 회장과 강 행장이 반목했다.

이후에도 어윤대 회장과 당시 임영록 사장, 이후 1인자가 된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의 갈등은 계속됐고 결국 국내 금융권이 가진 후진적 지배구조의 민낯을 내보인 'KB사태'를 초래했다. 열거된 갈등의 당사자들 중 단 한 사람도 KB금융 출신이 없다는 것은 조직원들에게 더 큰 '패배주의'를 안기는 이유가 됐다. 낙하산 인사와 CEO 사이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과거 독보적인 '리딩뱅크'였던 KB금융의 위상도 추락했다.



KB금융이 2014년 회장·행장이 동시에 물러나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서 불과 3년 만에 리딩뱅크 탈환을 목전에 둘 정도로 도약한 것은 '윤종규 체제'를 중심으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지배구조 체계를 확립한 결과다. 이 과정에서 KB금융 이사회가 각종 외압을 무릅쓰고 독립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이번 회장 후보 추천 과정에서도 관치와 노치 우려는 상당했다. 새 정부와 노동계에 인연이 있는 KB금융 출신 외부 인사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또 KB금융 계열사 노조협의회(KB노협)가 '회장 선임 절차 중단 요구→윤 회장 연임 찬·반 설문→연임 반대→경찰 고발' 등으로 갈등 수위를 높이면서 '윤 회장의 연임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KB금융 이사회는 외부의 각종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흔들기'에도 "안정적인 성장"에 무게를 두고 윤 회장을 포함한 내부 인사를 최종 후보군으로 선택했다. 이에대해 최 이사는 "외부 후보와 내부 후보간 점수차가 컸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추천을 받은 김유니스경희 사외이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추천을 받은 이병남 사외이사를 두고 '친정부 인사를 밀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됐지만 기우에 그쳤다.


윤 회장의 연임으로 내부 출신 중심의 경영승계구조 정착이 시작되면서 KB금융의 '호시절'은 계속될 이란 예상이 나온다. 최 이사는 "이사회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앞으로 계속 안정적인 지배구조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라며 "이번 이사회뿐만 아니라 전임 사외이사들도 이를 위해 노력했지만 실질적인 시스템이 작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윤 회장 15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사회 결정을 존중하고 경의를 표한다"거 말했다. 노조의 '반대' 목소리에 대해서는 "직원들과 소통하고 공유하려 노력했지만 정성이 부족했다"며 "대화 창구는 늘 열려 있어야 한다"고 대화 의지를 피력했다. 반면 KB노협은 다른 후보의 고사에 따라 차기 회장 후보로 윤 회장이 단독 추천된데 대해 "셀프 연임 자작극"이라고 비난하며 "윤 회장과 사외이사들의 퇴진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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