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은 폭행·몰카범은 발뺌… 지하철 보안관 '수난'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7.09.03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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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권 없어 단속 한계…제지하다 소송 휘말리기도

서울교통공사 이건영 지하철보안관이 전동차 내 구걸 행위를 제지하자 해당 시민이 이 보안관의 얼굴을 때리고 있다. /사진=이건영 지하철보안관서울교통공사 이건영 지하철보안관이 전동차 내 구걸 행위를 제지하자 해당 시민이 이 보안관의 얼굴을 때리고 있다. /사진=이건영 지하철보안관


#지난해 초 오전 8시 지하철 4호선 동작역에서 총신대입구역으로 가는 전동차 안. 60대 남성 한모씨가 여성 승객들을 대상으로 구걸을 하자 지하철 보안관 3명이 이를 막으려 다가갔다. 한씨는 "이거 안놔
XX야. 해볼래?"하며 보안관의 얼굴을 때렸고 갑작스런 폭행에 보안관의 안경이 바닥에 떨어졌다. 다시 붙들린 뒤에도 한씨는 "날 X같이 본다"며 두 보안관의 발을 자신의 발로 연거푸 찍었다. 약 2분간 폭행이 계속됐지만 지하철 보안관들은 동영상 증거를 남기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서울 지하철 역사·전동차 내에서 발생하는 난동과 범죄를 막는 지하철 보안관이 도입된지 만 6년이 됐지만 여전히 사법권(법을 집행할 권리)이 없어 단속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객이 욕설과 폭행을 해도 속수무책. 몰카(몰래카메라)범이 스마트폰을 내놓지 않아도 뺏을 권리가 없다. 지난달 31일 오전 8시부터 낮 12시까지 4시간 동안 이건영 보안관(45), 고강민 보안관(27)과 동행하며 이들이 겪는 실태를 파악해 봤다. 이 보안관은 입사 6년차, 고 보안관은 입사 5개월 차다.

지하철 보안관이 8월31일 오전 서울역 에스컬레이터에서 몰카를 적발하기 위해 살펴보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지하철 보안관이 8월31일 오전 서울역 에스컬레이터에서 몰카를 적발하기 위해 살펴보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첫 일과는 서울역 '몰카 감시'부터 시작됐다. 두 보안관은 에스컬레이터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 보안관은 2014년 몰카범 17명을 적발하기도 한 '매의 눈'으로 출근길 승객들을 꼼꼼히 살폈다.



한 남성이 스마트폰 카메라 방향을 여성 승객의 하체 쪽으로 향한 채 올라오자 이 보안관이 재빨리 자리를 옮겼다. 여성 승객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 보안관은 원래 자리로 돌아오며 "몰카를 찍는 승객은 느낌이 온다"며 "굉장히 경직돼 있고 카메라 각도가 여성 치마 쪽으로 향해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건영 보안관이 몰카범을 적발한 뒤 남긴 증거 영상./사진=이건영 보안관이건영 보안관이 몰카범을 적발한 뒤 남긴 증거 영상./사진=이건영 보안관
몰카 범죄도 점차 지능화 되고 있어 적발이 쉽지 않다. 이 보안관은 "4호선 사당역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남성이 무릎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얹어 앞에 여성을 찍고 있었다"며 "전형적인 몰카였는데 스마트폰을 확인해보니 사진·영상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하철 경찰수사대에 간 뒤에야 몰카앱에 숨겨 교묘히 저장해 둔 사실을 알았다.

몰카범을 잡아 보람을 느낀 적도 많다. 2015년 3월 4호선 전동차에서 한 남성 승객의 몰카를 적발한 뒤, 피해자인 여성 승객에게 몰카를 막기 위한 대처법까지 알려줬다. 이 여성 승객은 "지하철 보안관에 대해 몰랐는데, 범죄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에 감사의 글을 남겼다.


인터뷰 중 이 보안관이 다시 재빠르게 개찰구 쪽으로 뛰어갔다. 노숙인 무임승차였다. 이 보안관은 경찰에 연락했다. 보안관들이 사법권이 없어 경찰이 온 뒤에야 고발 조치를 할 수 있다.

한 승객이 이건영 지하철보안관의 손가락을 깨물고 있다./사진=이건영 보안관한 승객이 이건영 지하철보안관의 손가락을 깨물고 있다./사진=이건영 보안관
사법권 부재로 가장 힘든 것은 취객 등의 폭행이다. 지난해 8월5일 새벽에는 이 보안관이 술에 만취해 의자에 누워 있는 남자 승객을 깨웠더니 "XX끼야 꺼져"라며 그의 얼굴을 때렸다. 계단에서 승객을 데리고 이동하는 도중 손가락을 물린 일도 있고, 이 보안관의 동료는 낭심을 걷어 차이기도 했다.

경찰의 경우 범죄 의심자 등이 단속에 반발하거나 폭행을 가할 경우 수갑을 채워 체포하는 등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보안관들은 최소 방어권도 없다. 사법권이 없어 자칫 잘못 제지했다간 쌍방 폭행으로 소송에 걸릴 수 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승객의 팔을 붙잡거나 동영상을 찍어 증거를 남기는 정도. 방검복에 채워진 가스총·삼단봉에 대해 묻자 이 보안관은 "6년 동안 써본 일이 없다"며 "차라리 한 대 맞는 것이 편하다고"고 씁쓸하게 답했다.

지하철보안관들이 전동차 안을 순찰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지하철보안관들이 전동차 안을 순찰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단속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달 10일 여성 승객의 스커트 속을 찍은 남성 승객은 스마트폰을 달라고 하자 완강히 거부했다. 이 보안관은 "사법권이 없어 무력으로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행동하는 승객들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 보안관은 "몰카범입니다"라고 주위에 소리친 뒤에야 스마트폰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2년 8월 고희선 전 새누리당 의원과 2013년 노웅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관련 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올해는 4월 자유한국당 소속 함진규 의원이 지하철 보안관에게 사법경찰권을 주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이 보안관은 "철도 시설 안에서만이라도 제한적으로 사법권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현장에 있는 경찰 분들도 어느 정도는 재량권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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