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윤동주 떠났다"…'노래라는 것의 진정한 가치' 일깨운 참 음악인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08.2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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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세계에서 주류 히트곡 생산한 국민 포크가수 조동진 별세…대중음악을 예술의 영역으로

"가요계 윤동주 떠났다"…'노래라는 것의 진정한 가치' 일깨운 참 음악인


1970년대 ‘포크’는 저항의 상징이었다. 미국에서 일찌감치 반전과 저항의 무기로 등장한 포크 음악이 한국에 발을 디뎠을 때, 시대 상황을 반영하듯 김민기나 한대수 같은 음악인의 가슴엔 암시적 저항의 냄새가 짙게 배었다. 저항을 의도하지 않은 포크 가수들에게도 이 낙인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유일한 예외자가 있었다면 그는 조동진이었다. 단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와 주류에 섞이길 거부해온 그는 지하에서 서정과 낭만을 읊조린 ‘언더그라운드의 대부’였다. 그를 알아보기 힘들수록 그의 노래들은 더 많이 알려졌다.



음지라는 비주류 세계에서 누구나 아는 주류의 히트곡을 생산해내는 그의 ‘묘한’ 능력에 실력파 뮤지션들이 죄다 모였다. 김수철, 전인권, 김현식 등 80년대 가장 빛난 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그의 집을 찾았다.

당시 조동진 집의 ‘단골 손님’이었던 퓨전재즈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보컬, 기타)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조동진) 형의 음악이 너무 좋으니까, 흠모하는 차원에서 모두 달려든 거죠. ‘작은 배’, ‘내가 좋아하는 너는 언제나’ 같은 노래를 들으면 제 감성과 기억과 맞닿은 이 분의 기억은 무엇일까 호기심이 적지 않았거든요. 여행 작가로 말하면 가고 싶은 여행지를 아주 기가 막힌 표현으로 설명했다고 할까요?”

무엇보다 지금 들어도 문학적인 노랫말은 당시 작가들 사이에서도 ‘화제 0순위’였다. 김종진은 “문학가에게 윤동주가 있었다면, 음악바라기들에겐 조동진이 있었다”고 했다.

조동진의 노랫말은 70, 80년대를 이끌던 운문 중심의 시적 가사와 90년대 이후 생생한 현장감이 드러난 산문 가사를 적절히 배합해 듣는 이의 마음을 쉽게 ‘움직였다’. 잘 창작된 가사로 그가 중저음의 톤으로 마치 드라마 한 편 감상하듯 ‘3분의 스토리’를 전할 때, 대중음악은 예술의 영역으로 순식간에 옮겨 가기 십상이었다.


1979년 ‘행복한 사람’으로 데뷔해 2017년 8월 28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년 가까이 낸 음반은 6장에 불과했지만, 어떤 곡도 쉽게 지나칠 만큼 뻔하거나 가볍게 손댄 작품이 없었다.

지난해 20년 만에 내놓은 6집 ‘나무가 되어’도 ‘시간에 구속되지 않는 음반’이란 극찬을 받으며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받기도 했다.

"가요계 윤동주 떠났다"…'노래라는 것의 진정한 가치' 일깨운 참 음악인
조동진이 한국대중음악사에서 보여준 탁월한 능력은 단순히 노랫말에 국한하지 않는다. 음악 생활을 처음 시작한 1967년 미 8군 무대에서 재즈 록밴드 ‘쉐그린’를 통해 익힌 다양한 학습과 훈련은 걸작을 잉태하는 중요한 밑거름이었다.

그의 음악이 재즈에선 이미 보편화한 ‘7th 코드’(4화음) 계열로 당시 3화음 중심의 작법과 달리, 팝스럽고 세련된 어법을 구사한 배경도 미 8군 시절이 한몫했다.

“정말 신기했어요. 주법이 오픈 스트링(기타의 개방현을 그대로 이용하는 주법)이었는데, 이런 스타일은 누구에게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연주거든요. 가운데 두 줄만 갖고 연주하는데, 마치 어느 공간에 구속되지 않고 광활한 자연에 서 있는 느낌을 안겨줬어요. 그걸 처음으로 연주한 ‘형님’이었죠.”(김종진)

당시 조동진의 집을 자주 찾았던 뮤지션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무뚝뚝함의 대명사”, “음악 DJ” 등이다.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음악만 계속 틀기만 해서 붙여진 수식어였다. 그렇게 좋은 음악이 나올 때, 또는 시류에 맞는 유행 음악이 나올 때, 뮤지션들이 한마디씩 건넸다. “형, 우리도 (외국 뮤지션들처럼) 이렇게 해야 하지 않아요?” 조동진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꼭 그래야 되냐” 그렇게 묻고 대답을 들은 뮤지션들 중 상당수는 “음악 인생이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중견 뮤지션은 “별 의미 없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과묵한 선배가 그 한마디를 던졌을 때 시사하는 바는 엄청 컸다”며 “내겐 ‘음악가가 꼭 그래야 하느냐’로 들렸고, 음악인의 태도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수준의 영어 반복 가사가 난무하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가사 파괴 현상이 ‘대세’인 지금, 그의 한마디는 소리 없이 찾아온 현대 대중음악에 던지는 엄중한 경고 같기도 하다.

조동진은 오는 9월 예정된 콘서트 무대에도 오르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제대로 된 인사 한번 못 나누고 그렇게 ‘예정된 시간’과 이별했다. 그의 노래처럼 시간과 이별했지만, 그의 존재는 영원히 이곳에 남아있길.

“시간은 내가 따를 수 없는/바쁜 걸음으로/저만치 가버리고…그래 나는 여기 여기 남아있기로 했다.”(4집 수록곡 ‘일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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