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경영권승계'라는 묵시적 청탁의 함정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장 2017.08.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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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한 묵시적 청탁에 따른 뇌물죄'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재판부의 징역 5년 선고의 이유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유독 특검이 집착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혐의사실 중 핵심인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한 청탁이라는 이 가정(假定)은 이것이 실제인지에 대한 검증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삼성이 어떤 행위를 하든 그것은 대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다. 전세계 글로벌기업과 경쟁하는 삼성이 권력과 유착해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게 된 것은 오래다. 전세계에 삼성에 대해 질시와 감시의 눈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이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진행했던 각종 지배구조 재편은 그 당시 야당과 진보 진영에서 꾸준히 제기해왔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실행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다.



지배구조 개편의 우선적인 목적이 "정부가 순환출자 고리를 줄이라고 하니, 그렇게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건희 회장이 건강할 때부터 진행해 오던 일의 연장선이다.

삼성의 형식적 경영권 승계는 1997년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이를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고 이윤형 등 이 회장의 4남매에게 '3 vs 1 vs 1 vs 1'로 나눠줬을 때 이미 완성된 것이다.

삼성을 얘기할 때, 삼성전자가 90%라는 말이 있다. 삼성전자가 어떻게 지배되느냐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삼성전자'의 순환출자에서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이재용 부회장이 되면서 삼성의 형식적 경영권 승계는 이미 끝난 것이었다.

이는 그 당시 에버랜드 CB(전환사채) 저가 발행 문제를 제기했던 법학과 교수들과 당시 시민단체에서 일을 했고, 현재 정부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상속세 16억원만 내놓고 수백조원의 삼성 그룹의 경영권을 가져갔다고 비난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는 그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지 않았고, 그걸 완성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묵시적으로 했다며 삼성그룹의 넘버 1, 2, 3를 모두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구속했다.

사실 이재용 부회장이 16억원의 상속세만 내고 삼성그룹을 통째로 얻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아직 내야 할 상속세는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재산 약 18조원의 65% 내외인 11조원 가량은 더 있다. 또 이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 관장의 상속분 등을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더 내야 실질적 경영권 승계가 완성된다.

또 삼성전자 주주의 50% 이상은 외국인이다. 이들이 힘을 합친다면 삼성전자 경영권 논란은 무의미해진다. 그만큼 경영권이라는 개념이나 실체가 모호한 형태이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얘기되는 형식적인 삼성 경영권 승계는 완성됐지만 실질적 경영권 승계는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지분 중 상속세를 낸 나머지 부분을 받을 때의 일이라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삼성 내부에서 경영권 승계를 위해 별도로 필요한 건 실질적으로 없었다. 형식적 승계는 이미 끝나고, 실질적 승계는 이 회장의 부재시에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묵시적으로 청탁할 이유도 없었다는 얘기다.

2014년 5월 11일 새벽 1시경 기자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급히 달려간 적이 있다.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순천향병원에 급히 왔다가 사라졌다는 첩보를 입수한 후 수소문해서 찾아간 것이었다. 이 회장의 심근경색이 외부로 알려지기 8~9시간 전이었다. 그 당시에는 이 회장의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삼성이 정부와 야당에서 주장한 순환출자 해소 시나리오에 속도가 달라지긴 했지만, 방향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기 한달 전에 미리 정해놓은 대로 진행됐다.

그 실행은 '아버지의 사람'인 최지성 전 실장을 중심으로 한 미래전략실이었고, 이 부회장은 회장의 부재를 대리하는 위치에 있는 상황이었다. 그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세상은 이를 믿지 않는다.
오동희 부국장 겸 산업1부장.오동희 부국장 겸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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