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경찰’, 누구 보라고 만든 걸까

임수연('씨네21' 기자) ize 기자 2017.08.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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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경찰’, 누구 보라고 만든 걸까


* 영화 ‘청년경찰’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우서준, 좌하늘 두 청년이 있으면 여자 관객들이 그 손을 잡고 어딜 가도 무섭지 않았으면 좋겠다.”(‘스타뉴스’) 박서준·강하늘 주연의 영화 ‘청년경찰’이 공개되기 전 김주환 감독은 “15~25세의 여성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두 배우가 여심을 저격할 것이라 믿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청년경찰’의 주요 타깃이 젊은 (이성애자) 여성 관객이라는 것은 그만큼 명백해 보인다.

‘청년경찰’은 감독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경찰대학교 입학에서부터 권태를 느끼기 시작하는 3학년에 이르기까지, 기준(박서준)과 희열(강하늘)의 모습을 보여주는 초반부는 두 배우가 가진 좋은 이미지와 매력적인 연기의 덕을 톡톡히 본다. 특히 희열이 자연스러운 미소를 연습하는 모습은 박서준의 능청스러운 말투와 강하늘의 해맑은 인상이 완성해낸, 상당히 귀여운 코미디다. 하지만 두 사람이 범죄 현장을 목격하면서부터 영화는 그들의 주 소비층을 배반한다. 희열과 기준이 밤늦은 시각, 호감을 느낀 여성의 번호를 따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졸졸 쫓아가는 모습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각종 범죄를 떠올리게 한다. 희열과 기준이 쫓아가던 여성이 봉고차에 납치를 당하고, 두 사람은 이것이 가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범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희열이 “성매매”를 우려하는 장면 뒤에, 조선족들에게 납치 피해자가 배 위에 강제로 주사를 맞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신이 이어진다. 주요 타깃층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보여줌으로써 한껏 공포심을 끌어올리며 영화에 몰입시키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묘사는 작품에 필요한 긴장감을 훌쩍 뛰어넘는 불쾌함을 유발한다. 자꾸 코미디를 시도하는 장면을 이어 붙이는 등 여성 범죄를 다루는 진중한 태도가 결여되면서 사건은 두 청년의 각성과 성장을 위해 손쉽게 이용당한다. 더군다나 이 영화의 젊은 여성들은 남성들의 성취를 증명하는 보상체계를 위해 소모된다. 두 주인공이 경찰이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는 것은 클럽에서 만난 여성에게 당한 무시 때문이었고, 모든 일이 끝난 후 그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은 그들이 호감을 가졌던 피해 여성의 포옹이다.



거의 모든 상업 영화가 그렇듯, ‘청년경찰’은 시나리오 작업 단계부터 개봉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감독부터 제작사 무비락, 투자·배급을 할 가치가 있을지 검토했을 롯데엔터테인먼트, 촬영에 참여한 스태프들, 그리고 모니터링 시사회까지. 게다가 ‘청년경찰’은 8월 극장가 성수기에 개봉할 만큼 배급사가 신경 쓴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심각한 여성 범죄를 보여준 뒤 말장난이 포함된 장면을 이어 붙이거나, 굳이 난자를 적출당한 후 몸이 망가진 여성의 복부를 자세히 보여줄 수 있었을까. 혹은 누군가 의견을 제시했더라도 수렴되지 않았던 것일까. 심지어 ‘청년경찰’에는 어린 여성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 동안, 기준과 희열이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안전이 보장된 학교 안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고 유도나 검도를 하며 몸을 단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씬들 사이에는 얼마 전 종영한 KBS ‘쌈, 마이웨이’를 연상시키는, 박서준의 근육을 멋스럽게 찍은 장면이 삽입된다. ‘청년경찰’에 참여한 사람들은 여성 관객의 욕망을 이 정도로만 파악한 것일까.

최근 충무로에서는 젊은 남자배우들만이 중심이 되는 영화가 거의 기획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스물’, ‘동주’, ‘박열’, ‘조작된 도시’, ‘리얼’, 그리고 ‘청년경찰’ 등 정도다. 이 중 ‘청년경찰’처럼 젊은 여성 관객을 주 타깃으로 삼았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영화는 더욱 드물다. 그 손에 꼽히는 작품 중에 ‘청년경찰’처럼 관객층에 대해 무지해 보이는 영화가 나온다. 때문에 ‘청년경찰’은 공교롭게도 지금 한국 영화계가 젊은 여성의 소비를 얼마나 안이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청년경찰’이 여성 관객에게 유발할 수 있는 불편함은 장르의 호불호 같은 영역이 아닌, 기본적인 배려의 결여에서 오기 때문이다. ‘CGV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에 따르면 1인 관람객 중 20대 여성의 비중이 가장 높고 다양성 영화를 가장 많이 찾는 관객 역시 20대 여성이다. 젊은 여성들은 ‘청년경찰’ 같은 영화만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라도 극장을 찾아 다양한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공략한다고 제작되는 한국 영화는 ‘청년경찰’ 같은 것들이다. 대체 무엇을 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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