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남북 경협…어디서 물꼬를 틀까?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2017.08.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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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랜딩]한반도 전쟁위험 속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남북 경협

편집자주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지난 8월 15일 광복 72주년 기념 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지금껏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는 경색된 남북 관계에 대한 개선 의지를 비추거나 이산가족 상봉 등 각종 남북 교류를 제의하는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이번 문 대통령의 8·15 기념사에서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호소가 주를 이뤘고 남북 간 경제협력은 듣기가 어려웠다.

사실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만 해도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은 매우 높았다. 특히 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 직후임에도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정착에 대한 의지가 담긴 신베를린 구상까지 발표했다.



최근 발표된 국정과제 100대 과제 속에서도 '한반도 신경제지도 및 경제통일 시현'이라는 테마 아래 남북 경협 피해기업을 지원하고 남북 관계의 상황을 감안해 유연하게 민간 경협을 추진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여건 조성 시 개성공단 정상화 및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남북 공동 자원 활용을 위한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하지만 이런 문 정부에게 돌아온 것은 북한의 ICBM을 통한 전쟁 위협 뿐이었다. 게다가 김정은의 계속되는 무력 도발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불사 발언이 이어지면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북한과 미국이 서로 차분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면서 남북 경협 사업은 표류하다 못해 이젠 아예 설 자리마저 잃고 있는 상태다.


지난 8월 초 미 국무부의 그레이스 최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의 도발적 행동에 직면해 개성공단을 폐쇄한 2016년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20일 미국 상원에서도 북한의 금융 거래를 돕고 있는 중국 은행들에 경고하는 동시에 북한을 국제 금융망에서 사실상 퇴출시키는 대북금융제재안을 발의했는데, 이 법안에서는 북한이 핵을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등을 폐기하기 전까지 개성공단이 재개돼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미 국무부와 의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향후 개성공단 재개가 상당히 힘들어졌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미 중단된 남북 교역이나 금강산관광에 이젠 개성공단까지 포함해 남북 경협의 모든 활동이 북한의 핵개발 혹은 무기개발 전용 가능성으로 의심되면서 이젠 남북 경협의 재개가 우리의 손을 떠나 북미간의 문제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남북 경협은 한국 내에서조차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통일부는 개성공단 폐쇄 및 5·24조치, 그리고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피해를 본 남북 경협기업에 대해서 피해 보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났음에도 개성공단 기업에 대한 피해보상 조치는 여전히 미흡하게만 보인다.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기업의 피해액을 1조5000억원으로 주장하는 반면, 통일부는 피해신고금액 9446억원 중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7779억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부는 1조원 규모의 지원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그 중 절반은 정책 대출금(5500억원)이고, 일부는 기업들이 사업을 시작할 때 납입한 경협보험금(1900억원)이다. 그나마 정책대출금의 상당액은 대출금리가 4%에 달해 실질적인 지원효과가 부족하다고 기업들은 하소연하고 있다.

게다가 문 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방북 의사를 타진해왔던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8·15 광복절을 앞두고 방북 신청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하에서 조직돼 3년간 활동해 온 통일준비위원회도 지난 7월 4일 국무회의에서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민간 차원에서 남북 경협의 물꼬를 튼 현대그룹은 유동성 위기로 기업이 사분오열되었고, 대북사업을 주관하는 현대아산은 최근 매년 80억원 가량의 적자를 내고 있으며, 누적된 매출 손실만 거의 1조원에 달한다.

남북 경협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도 냉담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통일연구원이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개성공단이 재개되어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 반대 의견이 거의 절반에 달했다.

과거 폭넓은 대국민 지지를 받았던 남북 경협에 대한 여론이 이처럼 악화된 것을 보면 국민들도 지속되는 대북리스크 속에 남북 경협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과거 한국경제의 신성장동력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추진되었던 남북 경협사업이 현재와 같이 전무한 상황이 돼버린 것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우리 경제에 마이너스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제 남북 경협사업을 우리가 재개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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