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사이는 체구가 아담한데다 얼굴도 곱상하게 생겨 얼핏보면 여자로 착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말수가 적고 목소리도 작고 부드러웠다. 대화할 때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향할 정도로 숫기가 없었다. 그런데도 성격은 냉혹하기 이를 데 없어 사람을 벨 때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다고 한다.
겐사이는 용병이 아니었다.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확신범'에 가까웠다. 겐사이와 같은 자객들을 '유신지사'라 부른 이유다. 그럼에도 살인이 정당화될 순 없다. 차가운 살인마였던 겐사이도 결국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어느 순간 살인을 중단한다. 그는 자신이 따르던 유신세력이 개국정책을 펴자 이에 반대하다 결국 유신세력의 손에 참수된다.
그러나 재판 결과는 중요한 게 아니다.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하는 순간 그는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검찰에 소환돼 포토라인에 서는 순간 평생 쌓아온 정치적 지위와 사회적 명성은 모두 사라지고 만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것 자체가 목적일지도 모른다. 검찰의 조사를 받던 중 해서는 안 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도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구속영장 청구 문제를 놓고 시간을 끄는 사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영혼의 벗'을 대검 중수부의 손에 잃은 문재인 대통령의 눈에 특수통들이 어떻게 비쳤을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문재인정부 출범과 함께 특수통들이 찬밥 신세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던 이유다. 그렇잖아도 문 대통령의 공약대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가 신설되면 검찰 특수부서는 기능 중복으로 역할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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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로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달랐다. 특수통들이 검찰총장 뿐 아니라 서울중앙지검장에 서울중앙지검 1·2·3차장까지 모조리 꿰찼다. 공안수사 라인을 책임지는 2차장 자리는 그동안 공안통들의 몫이었지만 이마저도 특수통에게 돌아갔다. 법무부는 "적폐척결 수사를 적극 수행하기 위해 전문성을 토대로 적임자를 발탁했다"고 했다. '적폐척결'이 특수통들의 동아줄이 돼 준 셈이다.
특수부 칼잡이들이 과거 정권의 배려를 받았던 건 그만큼 정권이 칼잡이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예외가 노 전 대통령이었다. 이번 정부는 단지 그런 예외가 아닐 뿐이다. 정권과 칼잡이들의 공생은 그렇게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