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석탄’, 비민주적 ‘석유’…화석연료가 던진 부와 정치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08.05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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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황금의 샘 1, 2’, ‘탄소 민주주의’…화석연료 시대의 정치권력

민주적 ‘석탄’, 비민주적 ‘석유’…화석연료가 던진 부와 정치


1859년 모두의 조롱 속에 드레이크 대령이 석유 시추에 성공했다. 인류가 노예 같은 노동과 의식주의 결핍에서 해방된 기념비적인 해였다. 석유는 곧 돈이라는 인식이 확립되면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의 부의 실체가 드러났고, 억만장자 개념도 등장했다.

영국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간 것 역시 석유의 관점에선 필연적 수순이었다. 최대 석유 수출국으로 발돋움한 미국이 최강국의 면모를 가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으니까.



석유가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중동 분쟁이나 다국적 기업의 탄생이 석유에서 시작됐다는 사실 정도는 기본 상식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석유라는 자연 재화가 민주주의라는 인간의 정치적 가치에 영향을, 그것도 아주 깊게 미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석유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짚어보는 두 권의 책이 나란히 나왔다. 석유의 탄생부터 미래까지 면밀히 고찰해 볼 수 있는, 25년 만에 개정된 퓰리처상 수상작 ‘황금의 샘’과 화석연료와 민주주의 관계를 냉철하게 성찰한 ‘탄소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두 책은 인류 진화를 가능케 한 물질로 ‘석유’를 맨 앞줄에 내세운다. 전자가 석유로 인해 달라진 20세기와 21세기 역사 전반을 훑는다면, 후자는 막강한 재료 하나로 달라진 민주주의의 속살을 파헤친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16세기는 석탄의 시대였다. 하지만 석탄은 산업화라는 가속사회의 이점에도 환경오염이라는 오점을 남겼다. 19세기 등장한 석유는 산업화와 친환경이라는 두 가지 이점을 모두 획득하는 가장 매력적인 자원으로 등극했다.

석유는 정치적 환경에선 ‘지도자의 결정’을 순식간에 바꾸는 마법의 장치로 작용했다.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후협약을 놓고 상반된 결정을 내린 것도 석유가 지닌 힘의 논리 때문이었다.


오바마는 개발 기술로 석유의 재탄생을 알리는 셰일오일과 셰일가스 덕분에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는 기후협약을 비준했지만, 트럼프는 같은 배경에서 다른 결정을 내렸다. 미국 전기 중 40%가 석탄에서 생산되자, 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민주적 ‘석탄’, 비민주적 ‘석유’…화석연료가 던진 부와 정치
석탄과 석유라는 탄소 연료가 민주주의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탄소 민주주의’는 사회-기술적 세계가 석유의 등장으로 어떻게 재조직되고, 이 과정에서 어떻게 특정 종류의 민주주의 또는 비민주주의가 발현되는지 보여준다.

이를테면 석탄의 시대는 이 에너지를 채굴하고 분배하는 데 필요한 사회-기술적 질서가 필요했다. 에너지 특성상 석탄을 채굴하는 노동자들이 탄광 파업 등의 행동으로 자본의 힘에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민낯은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석유로 이동한 시대에서 민주주의의 형태는 변했다. 석유의 특성이 네트워크나 에너지와 금융 간의 연계 등 무형의 관계로 발전하면서 민주적 질서를 건설할 권력이 사라진 것이다. 중동 지역의 민주주의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달러 가치가 석유 흐름에 의존하는 연결망이 만들어지면서 달러가 풍부해졌는데, 이는 미국에 민주주의의 대중화를 가져왔다. 석유 산업을 주도한 미국이 이익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 석유 희소성 체제를 유지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중동이 비민주적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는 얘기다. 자유로운 석유의 물질적 특성이 금융 체제, 전문 지식과 연결되면서 석탄의 사회-기술적 체제와는 다른 세계가 탄생한 셈이다.

두 책은 궁극적으로 이렇게 묻는다. 2040년쯤 집마다 알파고 한 대씩 가진 세상에서 그 알파고를 움직일 에너지는 있는가. 또 다른 에너지원으로 부상하는 재생 에너지 자원이 만들어 낼 사회-기술적 질서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탄소 민주주의’의 저자 티머시 미첼은 “화석 에너지에서 재생 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석유 고갈이나 기후 변화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병들어 있기 때문”이라며 “민주적인 미래 가능성은 화석연료 시대를 끝내는 과정에서 우리가 발전시킬 정치적 수단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황금의 샘=대니얼 예긴 지음. 김태유, 허은녕 옮김. 라의눈 펴냄. 1392쪽/4만9600원.

◇탄소 민주주의=티머시 미첼 지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옮김. 생각비행 펴냄. 532쪽/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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