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저래도 '공급과잉'…반토막난 국제유가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2017.08.03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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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증산 압력…OPEC 감산합의, 사우디 수출감축 선언도 안 통해

편집자주 세계 경제가 좀 이상하다. 성장세가 강해지고 있다고 하는데 경기 회복세와 더불어 상승 흐름을 타야 할 지표들은 좀처럼 오르지 않고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임금, 생산성, 유가, 실질금리 등 5개 지표가 대표적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물론 유력 경제학자들도 이들 지표가 뒤처져 있는 이유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계 경제를 둘러싼 '5저 미스터리'를 5회에 걸쳐 풀어 본다. [글 싣는 순서] ①저인플레이션 ②저임금 ③저생산성 ④저유가 ⑤저금리

이래도 저래도 '공급과잉'…반토막난 국제유가


국제 유가가 최근 배럴당 50달러 선을 오르내릴 때마다 국제 금융시장의 희비가 교차한다. 50달러가 국제유가의 심리적 저항선이자 지지선이 된 셈이다.

국제 유가는 지난해 1월 한때 2000년대 초반 이후 처음 배럴당 20달러 대로 밀려났다. 당시 20달러 선이 곧 깨질 것이라는 경고가 빗발친 걸 기억한다면 50달러는 감지덕지한 수준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유가 50달러 선을 놓고 노심초사하는 건 딱해 보일 정도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는 2000년대 들어 꾸준하게 올랐다. 기준물인 브렌트유 선물(근월물) 가격은 2008년 6월 사상 처음 배럴당 140달러를 돌파했다. 같은 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잠시 내림세로 돌아섰지만 2011~2013년엔 110달러 안팎에서 안정을 되찾았다. 2014년에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지만 6월 말에 고점(114.81달러)을 찍은 뒤 자유낙하하듯 곤두박질쳤다. 국제 유가가 요즘 배럴당 50달러 안팎에서 제아무리 움직여도 2014년 고점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국제 유가가 급락한 건 원유의 공급과잉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미국에서 일어난 '셰일혁명'이 원유 공급을 극적으로 늘렸다는 지적이다.



셰일은 단단한 진흙 퇴적암층이다. 여기서 원유나 천연가스를 추출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 셰일 개발은 한동안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압파쇄법'(프래킹)이 개발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프래킹은 물과 모래, 화학약품 등을 섞은 혼합액을 고압으로 분사해 퇴적암층을 깨는 공법이다. 비용 부담이 극적으로 낮아지면서 미국에서 셰일 개발 붐이 일었다. 덕분에 미국의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량은 지난 10년간 약 60% 증가했다. 산유량이 급증하자 미국은 2015년 40년 만에 석유 금수 조치를 해제했다. 시장에서는 미국이 2020년까지 원유 수출량을 4배로 늘리며 세계 10대 원유수출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도 유가 하락을 부채질했다. OPEC은 과거 공급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식으로 유가 안정을 도모했다. 2014년 말에 이미 국제유가가 반 토막 났지만 OPEC은 요지부동이었다. 시장 점유율 욕심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주요국은 오히려 산유량을 늘렸다. 생산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미국 셰일업계를 압박하려면 유가를 더 떨어뜨려야 한다는 계산도 작용했다.


가격이 떨어지면 생산량을 줄여야 하지만 OPEC은 지난해 11월에야 가까스로 감산 합의를 도출했다. 러시아·멕시코 등 OPEC에 속하지 않은 주요 산유국도 동참, 하루 180만 배럴 규모의 감산에 합의했다. OPEC의 감산 합의는 2008년, 비회원국까지 동참한 합의는 2001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 5월에는 기존 감산 합의 시한을 내년 3월까지 9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합의 때마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50달러 선을 회복했지만 부침이 끊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감산 합의 이행 수준이 만족스럽지 않다. OPEC의 감산 합의 이행률은 70% 수준에 불과하다. 급기야 사우디는 최근 원유 수출량을 이달부터 하루 660만 배럴로 40만 배럴 감축하겠다고 선언해 국제유가를 3% 넘게 띄어 올렸다. 그러나 사우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닉 버틀러 파이낸셜타임스(FT) 에너지 담당 칼럼니스트는 OPEC의 감산 합의에서 배제된 리비아와 나이지리아의 증산이 사우디 효과를 상쇄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내년 대선을 앞둔 러시아나 최악의 정정불안과 경제난에 직면한 베네수엘라 등 다른 산유국도 사우디의 감산으로 국제 유가가 반등하면 오히려 더 큰 증산 유혹을 받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셰일업계도 마찬가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신 보고서에서 미국과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의 원유 생산량이 내년에 하루 150만 배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FT는 중국의 원유 수요가 계속 늘고 있지만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수요가 정체되거나 감소하면서 중국의 수요 증가분을 상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버틀러는 국제 원유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다시 균형을 이루려면 하루 150만~200만 배럴의 추가 감산으로 과잉재고를 해소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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