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직면한 최대 난제가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인플레이션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미국의 경기 회복세가 제법 강력함에도 인플레이션 압력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어서다.
FRB의 강력한 통화완화정책이 경기회복세를 주도했다. FRB는 금융위기에 맞서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제로(0)까지 낮추고 자산을 매입해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덕분에 10%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이 6월 현재 4.4%까지 떨어졌다. 5월에는 4.3%로 1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완전고용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FRB는 고용시장의 회복세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으로 기대했다. 2015년 12월 금융위기 이후 처음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 지난 6월까지 3차례 더 인상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인플레이션 지표가 뒷걸음질하자 재닛 옐런 FRB 의장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고용안정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FRB는 금리인상 여부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FRB는 올해 기준금리를 한 번 더 올린다는 방침이지만 시장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옐런 의장도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 인플레이션 지표에 이상이 있으면 통화정책을 재고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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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BOE)도 경기 회복세를 근거로 통화정책 고삐를 죌 태세지만 난감하다. 일본은행(BOJ)은 공격적으로 돈을 푸는 통화부양을 지속하고 있는데도 다른 중앙은행들처럼 2%인 물가 안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선진국보다 성장세가 더 강력한 신흥국의 인플레이션 수준도 1997년 이후 최저치에 머물러 있다.
저인플레인션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고용시장 여건이 간판 지표만큼 좋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당수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임금 수준이 낮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 의회예산국(CBO) 국장을 지낸 더글러스 홀츠-에이킨 아메리칸액션포럼 대표는 세계 경제의 불균형한 회복세, 재화와 서비스의 차이를 문제 삼았다. 미국은 최근 1년간 서비스 가격이 2.4% 뛰었지만, 재화 가격은 0.3% 오르는 데 그쳤다. 문제는 파리에 사는 사람이 뉴욕에서 모자를 살 수는 있어도 머리를 자르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뉴욕에서 파는 모자는 세계 시장에 존재하지만 이발이라는 서비스는 미국에서만 소화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기가 아무리 좋아도 세계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재화 가격 상승세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을 글로벌 저인플레이션의 진원지로 지목한다. 전자상거래가 가격경쟁, 자동화 경쟁을 부추긴 게 저물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은 최신 보고서에서 세계화와 기술의 진보가 임금을 억누르는 구조적 요인이 한동안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중앙은행들이 결국 장기간 목표치를 밑도는 물가상승률을 용인한 채 통화정책을 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BIS는 저인플레이션 등을 핑계로 금리인상을 마냥 늦추면 금융안정성과 거시경제에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