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포스트휴먼 오디세이]대중문화 정복한 '6백만불의사나이'

머니투데이 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2017.07.22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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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과학언어 '바이오닉스'를 이긴 '사이보그'…트랜스휴먼을 상상하는 기초가 되다

그림1. 클라이니스와 클라인이 1960년에 만들어 낸 삼투압 펌프를 장착한 쥐. 소위 "첫 번째 사이보그"로 꼽힌다. 그림1. 클라이니스와 클라인이 1960년에 만들어 낸 삼투압 펌프를 장착한 쥐. 소위 "첫 번째 사이보그"로 꼽힌다.


맨프레드 클라이니스(Manfred Clynes)는 피아노를 공부한 호주의 음악도였다. 그는 미국의 프린스턴으로 공부하러 왔다가 당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재직하던 아인슈타인에게 피아노를 들려주면서 친해졌고, 아인슈타인의 자필 추천장을 가지고 유럽 순회공연을 떠나 대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에 더 머물기 위해 직장을 잡기로 결심한 클라이니스는 아날로그 컴퓨터를 하나 구입해서 이를 독파한 뒤에 컴퓨터 기술자로 취직했다.

우연히 만난 그의 재능에 주목한 사람은 로크랜드 병원의 정신의학 연구자 네이든 클라인(Nathan Kline)이었다. 클라인은 조현병약을 개발해 노벨상 다음으로 권위가 있는 라스커상을 받은 뛰어난 연구자였다. 당시 미 공군은 우주비행 시대를 맞아서 파일럿 출신 우주인의 정신 건강에 관심이 많았고, 로크랜드 병원의 여러 연구를 아낌없이 지원하던 상태였다. 클라인은 클라이니스를 설득해 회사를 그만두게 하고 병원으로 직장을 옮기게 하는 데 성공했다.



◇ 극한적인 환경인 우주를 탐험하는 사이보그

같은 병원에서 일하게 된 둘은 인간이라는 약한 생물종이 우주라는 낯선 환경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는지 고민했다. 인간은 밤낮과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 신체 리듬이 깨지고 근육이 약해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계를 사용해서 혈압, 맥박, 혈당 등 몸 상태를 체크 해야만 했다. 즉, 하루에도 몇 번이고 기계에 건강을 의존해야 했던 것이다.



이들은 발상의 전환을 했다. 이렇게 기계에 의존하는 대신 기계를 몸 일부로 넣어 버리면 어떨까? 몸에 약물을 주입하는 펌프를 삽입해서 심장 박동이 약해지면 심장을 빠르게 하는 약물이 밤이 되면 수면 유도제가 자동 주입되는 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건강 체크업을 하지 않고 우주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몸 밖의 기계에 종속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몸속에 기계를 집어넣은 것이었다. 이들은 1960년에 이렇게 생명체와 기계가 결합한 존재를 '사이버네틱 오가니즘'(cybernetic organism), 즉 '사이보그'(cyborg)라고 명명했다.

클라인과 클라이니스는 사이보그에 진화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생명체는 새로운 환경에 맞게 계속 진화한다. 그런데 새로운 환경이 생명체가 살기에 힘들 정도로 극한의 환경이라면 생명체는 더는 살 수 없다. 예를 들어 물고기를 육지에 던져 놓으면 물고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 것처럼.


그런데 만약에 물고기가 아주 똑똑해서, 자기 몸의 장단점과 육지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육지에서도 살 수 있게 자기 몸을 변형시킬 수도 있다. 우주를 탐사하는 인간은 이런 물고기와 비슷하다. 인간은 극한 환경인 우주에서 생존할 수 없지만, 매우 똑똑하기 때문에 우주에서 생존할 수 있는 형태로 자신의 몸을 변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변형이 바로 기계와의 결합이었다.

이들은 이런 사이보그가 가능하다는 증거로 삼투압 펌프를 단 쥐를 만들어 냈다.이들의 논문이 나온 직후에 '라이프' 잡지는 이 두 연구자에 대한 소개와 함께 "우주에서 살 수 있게 다시 만들어진 인간"(Man Remade to Live in Space)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사이보그 비전은 낭만적 우주 탐험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기도 없고 중력도 약하며 훨씬 추운 달에서 일하기 적합하게 개조된 사이보그 인간은 목에 전기장치를 달아서 입을 열지 않은 채로 성대의 떨림으로만 얘기를 주고받고, 식사는 농축된 음식을 혈관에 주입하는 것으로 대신하며, 배변은 다시 걸러서 음식으로 재사용됐다.

이들은 우주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일하도록 개조된 '노예'에 다름 아니었다. 과학을 전공했다는 한 독자는 이 기사에 대해 "끔찍하다"는 편지를 보냈고, 잡지는 이런 사이보그가 다시 지구로 돌아오면 수술을 통해 정상인으로 전환된다는 편집인의 변명 아닌 변명을 실어야 했다.

그림  달의 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사이보그. 이들은 몸에 붙는 얇은 우주복을 입고 달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게 개조된 존재였다.그림 달의 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사이보그. 이들은 몸에 붙는 얇은 우주복을 입고 달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게 개조된 존재였다.
사이보그에 큰 관심을 보인 연구 단체는 우주 탐사를 총괄하던 나사(NASA: 미우주항공국)였다. 나사는 사이보그에 대한 연구팀을 꾸렸고, 이 연구팀은 1963년에 "사이보그 연구: 우주를 위해 인간을 공학하기"(The Cyborg Study: Engineering Man for Space)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에는 사이보그 연구가 의학, 바이오사이버네틱스, 생명과학, 공학의 융합 학문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사이보그에 대한 나사의 연구는 이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보고서를 작성하던 연구팀은 사이보그에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이 당시에는 불가능하다고 내부적으로 결론을 내렸었다.

또 NASA는 소련보다 앞서서 달에 사람을 보내기 위한 절박한 국가 프로젝트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사이보그는 먼 미래에나 가능할지 모르는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의 영역으로 던져두었다.

그림3. 사이보그에 대한 나사의 1963년 보고서 표지. 사이보그 연구가 원으로 나타내지는 여러 학문들의 교차점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그림3. 사이보그에 대한 나사의 1963년 보고서 표지. 사이보그 연구가 원으로 나타내지는 여러 학문들의 교차점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1960년대 중엽부터 나사의 연구자들은 과학 소설의 냄새가 물씬 나는 사이보그라는 단어보다 '바이오닉스'(bionics=biology+electronics: 생체공학)라는 말을 더 즐겨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사이보그는 과학 소설과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 대중문화의 영역을 파고 든 사이보그

사이보그를 소개한 '라이프' 잡지의 기사에 감동한 사람 중에 과학 소설 작가로 이미 명성을 날리던 영국의 아더 클라크(Arthur Clarke)가 있었다. 그는 기계가 인간을 이어서 진화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믿던 사람이었는데, 사이보그가 인간과 기계 사이의 중간 단계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과학 소설의 대가답게 클라크는 사이보그라는 존재가 폐나 눈 같은 인간 몸 일부를 기계가 대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인간이 기계 속에 녹아 들어가는 것까지 확장된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 인간은 거대한 우주선이 되던가, 아니면 광활한 도시의 일부가 되는 것이었다. 인간이 우주선으로 변하는 생각은 이후 그의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미국의 과학 소설에서는 좀 더 직접적인 인간과 기계와의 결합이 등장했다. 공군의 바이오닉스 연구에 주목했던 소설가 마틴 케이딘(Martin Caidin)은 사고로 두 다리와 한 팔, 그리고 한쪽 눈을 잃은 스티브 오스틴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 '사이보그'(1972)를 썼다.

이 소설에서 미국의 특수 정보기관인 "전략작전국"(OSO)은 오스틴에게 엄청난 속력과 힘을 낼 수 있는 기계 다리와 기계 팔, 망원렌즈와 카메라가 장착된 인공 눈을 이식해서, 그를 사이보그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이렇게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된 그가 여자 주인공과 함께 중동에서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돌아온다는 것이 소설의 플롯이었다.

그림4. '6백만불의 사나이'의 원작이 된 마틴 케이딘의 '사이보그'그림4. '6백만불의 사나이'의 원작이 된 마틴 케이딘의 '사이보그'
이 소설은 큰 인기를 끌었고, 곧바로 미국 ABC 방송국에서 만든 '6백만불의 사나이'(Six Million Dollar Man)라는 TV 프로그램의 원작이 되었다. 몇 년에 걸쳐서 방송을 탄 '6백만 불의 사나이'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이 드라마는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였다. 매 회에 사이보그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은 빠른 다리와 강한 팔, 그리고 원격 감시가 가능한 눈을 가지고 위기를 극복하고 비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 인기에 힘입은 ABC 방송국은 소머즈라는 여성 사이보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머즈'(원제는 Bionic Woman)을 제작, 방송했다.

이후 80년대에는 악당에 의해서 사지와 얼굴 일부가 손실된 경찰 알렉스 머피가 손상된 신체를 기계로 대체해서 사이보그 경찰로 다시 태어나는 영화 '로보캅'이 개봉됐다.

'6백만불의 사나이'에서도 주인공이 자신의 몸 일부가 기계로 대체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곤 했지만, '로보캅'은 아예 사이보그의 정체성 문제를 영화의 핵심 소재로 다루었다. 기억이 지워진 채로, 첨단 상품인 로봇으로 취급되는 머피는 계속 자신을 괴롭히는 기억의 흔적과 자신이 로봇인가 인간인가라는 정체성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한다. 이후 사이보그는 '블레이드 러너' '에일리언' '스타 워즈' '스타 트렉' '공각기동대' 같은 영화에 등장했고, 이제는 SF 영화에서는 빠질 수 없는 감초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림5. 영화 '공각기동대'의 주인공 쿠사나기 소좌는 뇌를 제외한 몸의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한 존재이다. 그녀는 '로보캅'의 머피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한다.그림5. 영화 '공각기동대'의 주인공 쿠사나기 소좌는 뇌를 제외한 몸의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한 존재이다. 그녀는 '로보캅'의 머피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한다.
◇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인가?

이런 대중문화의 영향 때문에 사이보그의 시대가 이미 열렸고,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사이보그 연구를 지원했던 미 공군과 나사는 사이보그 연구를 곧 중단했고, 바이오닉스 연구에 대한 지원도 마찬가지였다. 사이버네틱스를 연구하던 연구자 대부분은 인간과 기계와의 융합을 꾀하는 사이보그가 아닌 인간과 기계와의 유비를 이용해서 인간이나 사회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주로 수행했다. 인간과 기계는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하나로 융합하기에는 너무나 다른 존재들이다.

1960년에 사이보그 개념이 창안되고 인공물이 몸속으로 들어온 사례들은 인공심장박동기와 제세동기, 인공뼈, 인공관절, 인공혈액, 그리고 최근 실험에 성공한 인공각막 정도이다. 다른 장기들에 대한 연구도 계속 진행 중이고,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실험들, 기계장치를 이용해서 감각기관의 역할을 바꾸는 실험, 근전류를 이용한 인공 의수 등이 계속 개발 중이지만, 아직 실험단계이거나 시제품이 개발되었어도 너무 비싸서 대중화되기 어려운 상태다.

영화에 보면 사이보그는 머리에 전극을 꽂고 엄청난 용량의 데이터를 전송받거나, 뇌의 데이터를 컴퓨터로 바로 옮기곤 한다. 그런데 뇌과학 연구자들은 인간의 뇌와 컴퓨터의 메모리가 작동하는 방식이 달라 컴퓨터에 저장된 것을 뇌로 옮기는 전송은 과학 소설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적으로는 (적어도 당분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작은 전자 칩을 팔에 이식하고 스스로 사이보그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지만, 이들의 칩은 건물 출입 카드나 버스 승차권을 대체하는 정도의 역할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몸에 칩을 이식한 것은 개나 고양이가 더 먼저였다.

1940-50년대에 등장한 사이버네틱스는 여러 갈래로 분화했다. 사이버네틱스의 분지 중 흥미로운 것은 영국과 소련의 사이버네틱스였다. 영국에서는 '통제의 과학' 사이버네틱스가 미결정성을 체화한 인공물들을 낳았고, 이를 통해 뇌를 새롭게 이해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소련의 사이버네틱스는 국가 경영의 철학 차원으로 확장됐다. 또 다른 분지가 우리가 살펴본 사이보그였다. 사이보그는 과학 연구 프로그램이 아니라, 대중문화 속에서 번식했고, 이를 통해 트랜스휴먼 상상력의 일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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