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프리즘]SKT-CJH 합병이 성사됐다면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2017.07.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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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블TV, IPTV(인터넷TV), 위성방송 등 미디어별로 흩어졌던 유료방송 시장이 KT와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포함) 양강 구도로 빠르게 재편된다. IPTV 후발주자인 LG유플러스와 티브로드, 딜라이브, 현대HCN 등 케이블TV 맹주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업자를 흡수하거나 자신을 팔아야 한다. 경쟁력 없는 아날로그 방송은 자취를 감추고 통신과 결합된 융합 미디어 서비스와 콘텐츠들이 속속 출현한다.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을 허가했더라면 미디어 시장에서 이런 역동적인 장면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경쟁사들의 주장처럼 SK텔레콤의 무선 시장 지배력이 방송 시장으로 옮겨 붙으면서 곳곳에서 출혈 경쟁이 펼쳐졌을 지도 모른다. 설령 공정위가 어떤 까다로운 승인 조건을 붙였더라도 유료방송 시장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7월 18일 공정위가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를 허가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한 이후 유료방송 시장은 1년 넘게 정체기다. 시장 경쟁은 사라진 지 오래다. 눈에 띌만한 미디어나 콘텐츠 혁신 실험도 없다. 케이블TV 시장 3위권 사업자인 딜라이브가 또다시 매물로 나왔지만 선뜻 사겠다는 매수자는 보이지 않는다. 공정위가 인수 불허의 기준으로 삼았던 ‘지역(방송권역)별 점유율’이 장벽이 돼 업계의 구조 개편 시도 자체를 가로막고 있다.

당시 공정위 심사를 두고 최근 드러나기 시작한 실체적 진실은 충격적이다 못해 허탈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및 최순실 게이트 공판에 출석한 공정위 직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공정위는 당초 ‘조건부 승인’ 의견을 유지해오다 막판 박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전면 불허’로 입장을 바꿨다. 이런 공정위의 최종 심사결과는 합병 반대 진영 내부에서조차 ‘의외’로 받아들였을 정도다. 박 전 대통령이 왜 양사 합병을 반대했는지 여부는 알 수는 없다. 다만 SK그룹이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씨 사업 지원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데 따른 ‘괘씸죄’가 작용한 게 아니었겠느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어찌 됐든 당시 공정위 심사결과가 산업 생태계와 소비자 후생 관점보다는 최고 권력자의 정치적 계산 혹은 이권에 따라 이뤄졌다는 건 분명하다. 공정위 심사절차와 판단 기준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요식행위이자 위조된 명분이었던 셈이다. 그 결과는 드러난 대로 참혹하다. 이해 당사자들이 잃은 손실 비용은 따져볼 필요조차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방송통신 융합은 가속화되고 있지만 국내 방송통신 산업은 2년째 발이 묶여있다.
[디지털프리즘]SKT-CJH 합병이 성사됐다면


당시 공정위 심사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 정부와 방송통신 업계가 두고두고 삼아야 할 ‘반면교사’다. 다행히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행정부 곳곳에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특정 지배 권력에 종속되지 않고 오직 대한민국 국민과 경제에 득이 되는 방향으로 행정 시스템과 의사결정구조를 쇄신하기 바란다. 특히 공정위는 ‘독립적 경제검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강도 높은 혁신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변해야 하는 건 방송통신 업계도 마찬가지다. 매머드급 변화 혹은 혁신을 기대하기엔 우리 산업 내부의 포용력은 너무나 천박하다. 지난해 공정위 심사를 전후로 지상파방송을 포함해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달려들어 직간접적인 압박과 흑색 여론전을 펼쳤다. 합병을 앞두고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조직 내적 갈등도 만만치 않았다. 합병 재추진 가능성 여부에 양쪽 모두 손사래를 치는 이유다. 이동통신 시장이 십수년간 견고한 5대3대2 점유율이 고착돼 있다는 것도 시장 변화 자체를 싫어하는 업계 안일주의의 대표사례다. 어떤 변화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서 글로벌 방송통신 트렌드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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