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트럼프 대통령의 수(手)를 읽어라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7.07.1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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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강경 의지 새로운 것 아냐,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 세워놓고 대응 전략 세워야

"한국과 나쁜 거래(bad deal)를 하고 있다. 어제 한국과 재협상(renegotiating)을 시작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프랑스로 향하는 도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내뱉은 말이다. 보도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기자들과 나눈 대화인데 백악관이 이를 공개했다.

실상은 한미 FTA 개정협상을 위한 공동위원회 개최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요구한 정도다. 개정협상을 돌입하는데에도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나쁜 거래를 수정하기 위해 협상을 다시 시작한 것처럼 표현했다. 한국에 대한 통상 압박이다. 불과 5개월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월 초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고맙다 삼성,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며 삼성이 미국에 가전 생산공장을 검토 중이라는 기사를 함께 링크했다. 기정사실화를 통해 압박하는 사업가 출신 다운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삼성은 지난달 33년 만에 4332억원을 투자해 미국에 가전 생산공장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에 대한 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취임 초기에 이미 '끔찍한 거래'라는 표현을 쓰며 재협상 의지를 밝혔다.

정부의 판단이 미숙했을 뿐이다. 당시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기존 통상정책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재협상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상대방의 수를 잘못 읽은 것이다.

정부는 재협상이 아닌 개정협상이라고 강조하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공동위원회는 열릴 것이고 미국이 압박하면 사실상 개정협상을 거절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한미 FTA 폐기시 올해부터 2021년까지 일자리는 24만개, 수출은 269억달러(30조3566억원) 손실을 볼 전망이다. 한미 FTA 폐기시 실이 많기 때문에 개정협상을 거절하면서까지 위험을 감수하기는 어렵다.

대응 논리를 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수를 읽는 것이다. '끔찍한 거래' 발언은 올해 초에 했는데 왜 지금 개정협상을 하자고 하는 것인지, 이를 통해 현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얻는 것은 무엇인지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단지 여론용으로 개정협상을 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미 FTA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쳐 무역 수지를 완화하겠다는 것인지도 파악해야 한다.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정해놓고 상대방의 패에 따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자수첩]트럼프 대통령의 수(手)를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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