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IPO 주관사의 어긋난 첫 단추

머니투데이 김명룡 기자 2017.07.1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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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일곱 살 딸아이가 스스로 하는 일이 늘었다. 유치원에 가기 전 옷을 입거나 머리를 빗는 일은 이제 스스로 한다. 그런데 아직도 단추가 많은 옷을 입는 것을 어려워한다. 가장 많은 실수를 하는 것이 첫 번째 단추를 잠그는 것이다. 열심히 단추를 다 채웠지만 단추구멍(혹은 단추)이 남는 일이 생긴다. 다시 단추를 풀고 다시 채워야 하지만 첫 번째 단추를 잘 못 채우는 실수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IPO(기업공개) 과정에서 첫 번째 단추를 잘 못 채우는 일이 많은 것 같아서다. 기업이 증시에 상장하기 위한 첫 번째 단추는 기업 가치를 매기는 일이다. 기업 가치에 따라 공모가가 결정되고 기업이 발행할 주식과 조달할 수 있는 자금 규모 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IPO 주관사는 기업의 현재와 미래가치 그리고 이미 상장된 유사 기업과의 비교가치 등을 고려해 기업 가치를 산정한다. 여기에 투자자 수익을 고려한 할인율을 적용해 희망공모가 밴드를 내놓는다.

문제는 희망공모가 밴드 상단 또는 밴드를 초과한 가격으로 공모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 경우는 주관사가 시장보다 회사 가치를 낮게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신규상장 60건 중 32건(53%)이 희망공모가 밴드 상단 가격 이상에서 공모가가 결정됐다. 올해는 21개 중 10개(48%)의 공모가가 희망공모가 밴드 상단 이상이다.



공모가 희망공모가 상단에서 결정돼 올해 상반기에 상장에 성공한 한 기업의 CEO는 "주관사 측에 기업의 가치가 지나치게 낮게 본 것 아니냐며 항의했지만 상장을 성공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며 희망공모가밴드를 수정해주지 않았다"며 "정작 청약 뚜껑을 열어 보니 일반청약 경쟁률이 700대1이 넘었고 시초가도 공모가의 2배 이상에서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원하는 수준에서 공모가가 결정됐다면 신주 발행에 따른 부담이 크게 줄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상장을 성공시키는 것이 우선일 수 있다"며 "공모규모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만큼 보수적으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밖에 공모가 하단 또는 밴드 하단을 하회한 가격으로 결정되는 사례도 지난해 28%, 올해 상반기 43%에 달했다. 이 경우는 상장 기업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했거나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공모가 희망밴드 중간에서 공모가가 결정된 경우는 지난해 18%, 올해 상반기 10%에 불과하다. IPO 업계에서는 희망공모가 밴드 중간에서 공모가가 결정되는 것을 이상적으로 본다.

공모가는 청약경쟁률, 시초가, 상장 이후 주가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IPO업무에 정통한 관계자는 "국내는 지나치게 주관사(증권사) 중심적이라 어지간한 규모의 IPO 빼고는 기업이 을(乙)의 입장"이라며 "희망공모가 밴드가 적정한 수준으로 맞춰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IPO주관사가 첫 단추를 제대로 채우는지 기업과 투자자들 그리고 언론이 주목해야 한다. 올해 하반기에만 80여 개의 기업이 IPO에 도전하고 있다.
[우보세]IPO 주관사의 어긋난 첫 단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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