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탈원전, 대안이 먼저다

머니투데이 강기택 경제부장 2017.07.05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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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엔 순서가 있다. 아무리 옳다고 해도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이 있다. 볍씨를 까지 않은 채 밥을 지을 수는 없다. 적절한 시기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설익은 밥이나 탄 밥을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이라면 더욱 그러해야 한다. 자칫 정부에 대한 신뢰를 해칠 수 있어서다.

그런데 원자력발전에서 지금 그런 일이 벌어졌다. ‘탈원전’ 기치 아래 정부(원자력안전위원회)가 승인한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사가 중단됐다. 시민배심원단을 꾸려 3개월 동안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이대로 멈출 경우 들어간 돈을 날리는 것뿐만 아니라 공사를 수주한 기업들에 수조 원의 손해배상도 해야 한다. 결국 세금이다.



돌이킬 수 없겠지만 정부가 개별 공사의 중단과 공론화에 앞서 할 일은 ‘탈원전의 공론화’였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 국민들이 모든 공약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민감한 이슈일수록 다른 후보를 선택한 59%의 유권자와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침묵의 반대자’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탈원전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절차적 정당성을 얻는 게 우선순위였다.

문 대통령은 공약에서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현재 30%에서 18%로 낮추고 대신 친환경 LNG(액화천연가스) 비중은 20%에서 37%,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5%에서 20%로 높이겠다고 했다. 원전 비중을 낮추고 LNG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겠다는 건 2014년 1월 확정된 2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의 방향성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빠른 속도’와 ‘비현실성’이다. 1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41%까지 높이기로 한 원전 비중은 2차에서 2035년까지 29%로 축소키로 했다. 7차 전력수급계획에선 2029년 28.2%로 하향 시점을 앞당겼다. 에너지안보, 산업경쟁력, 온실가스 감축 등의 측면에서 대체재가 없었다. 대신 원전의 안전성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여기엔 LNG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급격히 끌어올리기 힘든 점도 반영됐다. LNG는 지정학적 요인 등에 따라 가격이 치솟을 수 있고 공급 자체도 불안정할 수 있다. 태양광은 비가 올 때, 풍력은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LNG, 태양광, 풍력 모두 원전보다 발전단가가 비싸다. 이런 이유로 각국이 원전으로 유턴하고 있다.

가격도 관건이다. 석탄마저 줄이기로 한 시점인 데다 LNG와 신재생에너지는 발전단가가 비싸므로 전기요금도 오를 수밖에 없다. 물가를 염려해 인위적으로 요금을 억제하던 이명박정부의 방식을 또 쓸 수는 없다. 지난해의 누진제 사태처럼 가정용에 대한 요금저항도 적지 않겠지만 산업용, 상업용 가격이 올랐을 때의 물가부담도 계산해야 한다. 요금이 높아진 만큼 제조업체나 서비스업체는 가격을 구매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 ‘일자리’를 생각한다면 원전분야의 일자리 소멸은 물론 요금 상승에 따른 산업경쟁력 약화나 ‘값싸고 정전 없는 전기’라는 매력에 이끌려 국내에 들어온 외국기업의 이탈 가능성 등도 고려해봐야 한다.


[광화문]탈원전, 대안이 먼저다


이렇듯 탈원전은 ‘선의’나 ‘신념’만으로 풀어가기 힘든 국제정치·경제·산업적 변수가 존재한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가 경제성보다 환경과 안전을 강조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연말까지 8차 전력수급계획을 내놓겠다는 것 외엔 정부의 구체적인 방안도 없다. ‘저의’가 있어서라기보다 납득할 만한 ‘대안’이 안 보이니 걱정이 많고 반발기류도 거센 것이다.

첨언하면 대안의 신뢰도는 대안을 만든 사람에 대한 신뢰도다. 순서나 시기 이상으로 어떤 일의 성패를 가르는 건 누가 하느냐다. 정책에 대한 비판은 비전문가들도 할 수 있지만 정책을 생산하는 건 정부와 전문가들의 영역이다. 원전 비전문가들이 만든 공약과 비전문가들이 행하는 공론화나 그 결과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없다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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