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허깨비를 봤나 봐요" 변명은 충분치 않다

머니투데이 백지수 기자 2017.07.04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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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우리가 허깨비를 봤나 봐요."
대선 후 며칠 지나지 않은 지난 5월 어느 날, 국민의당 한 당직자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한 달 전이던 4월초 상황이 눈에 밟힌다고 했다.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가 대세론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지지율 골드크로스를 넘봤던 시점이다.

대선 후 두달. 지금은 정말 그들이 허깨비를 봤나 싶기도 하다. 최근 국민의당을 뒤흔드는 '문준용 제보 조작 사건' 때문이다. 국민의당 선대위 공명선거추진단은 대선 4일 전 문씨의 파슨스 동료와 통화했다는 짧은 녹음 파일 2건을 배포했다. 이 녹음 파일이 조작이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이다. 국민의당 내부에선 지지율 하락에 조급했다는 반성, 검증조차 안 했던 것이냐는 자아비판이 나온다.



그래도 유권자를 속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며 조작 사건을 고백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3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지난달 26~30일 조사에서 당은 창당 이래 최저치이자 주요 5대 정당 중 최하위인 5.1% 지지율을 기록했다.(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텃밭으로 자부했던 호남에서 자유한국당에게 밀렸다는 조사 결과도 나온다. 망신이다.

싸늘한 시선은 조작의 심각성 때문만은 아니다. 대선을 지휘한 국민의당 지도부가 이 중대한 국면에 숨어있다는 게 여론을 악화시킨다. 안 후보나 당시 선대위를 이끈 박지원 전 대표가 사건에 관여했거나 조작된 사실을 인지했다고 할 만한 진술이 없었다고 할 뿐이다. “모르는 일” “보고받지 못한 일”이라는 당 진상조사위원회 발표문에만 이들의 이름이 존재한다.



이 모든 사건이 대선 국면에서 일어났는데도 대선 후보나 당 대표의 대국민 사과는 없다. 대선 기간 안 후보를 취재한 기자들이 안 후보도 포함된 취재용 단체 채팅방에도 입장 표명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다. STI가 미디어오늘 의뢰로 조사한 6월 월례 여론조사에서 국민 절반 이상(53%)이 안 후보가 즉시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안 후보나 박 전 대표는 조용하다. 당안팎의 구성원은 물론 유권자들의 허탈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 지도부 자체가 허깨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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