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특검이 독배 준다면 마시고 끝내고 싶어"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17.06.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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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朴 잘 보좌 못해 참담한 사태, 책임 통감… 블랙리스트는 몰랐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뉴스1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뉴스1


문화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 명단) 사건으로 재판 중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8)이 정치적 책임은 통감하지만 범죄 혐의를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항변했다.

김 전 실장은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 심리로 열린 본인의 재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잘못 보필했다는 책임을 통감하고 수감생활을 감수하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을 잘 보좌하지 못해서 오늘 같은 참담한 사태가 생긴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국민께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제가 모시던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도 됐다"며 "비서실장이 잘 보좌했더라면 이런 일이 있었겠느냐는 정치적 책임은 통감한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과거 왕조시대 같으면 망한 정권에서 보좌 역할을 했으면 '백 번 죽어도 마땅하다'며 사약을 받지 않느냐"며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도 탄핵으로 무너진 대통령을 보좌했는데 특검에서 독배를 내리면 제가 마시고 깨끗이 끝내고 싶다"고 했다.



이어 "이 사건으로 수많은 증인을 오게 하고, 재판장과 특검에도 수고를 끼치고 있다"며 "무너진 정권의 비서실장을 했다는 것 자체가 책임을 통감할 일"이라고 했다.

김 전 실장은 심혈관계 질환 등 건강문제로 수감생활이 힘들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밖에 있을 땐 약물을 복용하고 매일 운동할 수 있었지만 여기(구치소) 들어오니까 그게 어렵다"며 "매일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을 갖고 생활한다"고 했다. 또 "언제가 됐든 옥사하지 않고 밖에 나가서 죽는 게 소망"이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다만 김 전 실장은 본인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판을 받으면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름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며 "모르는 것도 죄라면 죄지만 그런 일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구속되기 전에도 '비서실장 하면서 최순실을 정말 몰랐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는데 관저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고 안봉근, 정호성 그런 사람들이 알려주지 않아서 정말 몰랐다"고 항변했다.

김 전 실장은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 자체가 범죄가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그는 "정부에서 줄 보조금은 한정돼 있고 줘야 할 사람을 골라야 한다면 누군가는 배제될 수밖에 없다"며 "말단 직원들이 나름의 기준을 갖고 (지원금을) 삭감한 게 과연 범죄인가"라고 반문했다.

김 전 실장은 또 "만약 문체부가 하나의 기준과 원칙을 갖고 (업무를) 했으면 이런 문제가 안 생겼을 것"이라며 "이름을 부르고 넣고 빼고 이런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생겼다는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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