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30년만의 시인장관' 도종환의 나뭇잎

머니투데이 배성민 부장 2017.06.27 05:35
글자크기
6월21일 서울 종로 한 식당에서 열렸던 영화계 인사들과 저녁식사 자리. 사진 왼쪽부터 네번째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6월21일 서울 종로 한 식당에서 열렸던 영화계 인사들과 저녁식사 자리. 사진 왼쪽부터 네번째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꼭 햇수로 30년만이다. 시인 장관을 본 것 말이다. 장관 시인들은 모두 교과서에 시가 실려 있었다. 1988년의 정한모 문화공보부 장관과 2017년의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들은 모두 새로운 정부의 첫 문화 관련 부처 장관이었고 취임 전해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던 공통점이 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의 촛불 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정 장관의 교과서 시 '어머니' 마지막 연은 이랬다. ‘어머니는/오늘도/어둠 속에서/조용히/눈물로/진주를 만드신다.’ 당시 정부는 정권의 입보다는 국민들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을 원했는지 모른다. 도 장관의 교과서 시는 '담쟁이'라는 제목이었다. ‘저것은 벽/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그때/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촛불을 치켜들고 벽같은 권력자를 끌어내린 국민들의 심경도 묻어난다.



시인 장관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교육자였다. 정 장관은 서울대 교수였고 도 장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직교사 출신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정 장관이 교수에 이어 문예진흥원장을 거치는 등 비교적 순탄한 학자의 길을 걸었던 반면 도 장관은 해직과 투옥, 재임용 등 가시밭길을 걸었다.

사실 도 장관은 신문의 문화면보다 사회면에 더 많이 실렸었다. 도 장관(당시는 도 교사) 첫 기억의 기반이 되는 기사 첫줄은 이랬다. ‘할머니, 아빠는 뭐가 그리 바빠 집에 안 들어오는 거야.’ 1989년 7월 불법단체 결성 문제로 구속수감됐던 당시의 기사로 정확히는 도 장관보다 자녀들의 얘기가 실렸다. 도 장관은 당시 ‘서울행 버스에서’라는 짧은 글에서 ‘우리들이 져야 할 십자가라서 피하지 않고 오랏줄이 기다리는 서울로 간다’고 적었다.



몇 년뒤 대학에 입학한 뒤인 90년대 중반 해직교사 시인 도종환을 문학강연에서 마주한 적이 있었다. 복직 후 교단에 섰던 시인을 다시 본건 20여년 뒤 제단에서였다. 그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노제 등에서 제관을 맡고 추모사를 읽었다. 그리고 발언대와 연단의 정치인이 돼 블랙리스트를 끄집어냈다.

청문회와 국정감사 등에서 증인들과 관료들을 몰아세우던 그는 청문회를 거쳐 장관이 됐다. 고대사 역사관 등 몇가지 구설도 있었지만 그가 걸어왔던 길과 신념에 대한 믿음을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도 장관은 취임 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책, 영화, 연극, 체육과 여행 등의 매개를 통해 즐거움을 만드는 사람. 창작자들이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의 한 서민식당에서 영화계 종사자들과 자리한 도 장관을 만났다. 상석도 없었고 진수성찬도 아니었지만 이야기가 있었다. 독립영화 제작자와 소위 메이저 제작사와 배급사 직원, 시네마테크 후원자 등이 같은 반찬과 안주를 두고 가볍게 술잔을 기울였다. 소위 블랙리스트에서의 배제도, 차별도 없었다. ‘저는 술을 못 해요’ 정도의 사양만 있었달까.


시인이나 배우 등 모든 문화인 출신 장관들은 프랑스의 문호이자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 같은 평가를 받기를 꿈꾼다. 지식인, 작가, 혁명가, 정치인(행정가)였던 말로는 박물관.전시관.도서관 성격을 겸하는 문화관을 많이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김화영 역, '앙드레 말로 평전'(김영사) 참조). 그는 문화관 개관식과 의회에서 “수십 킬로의 도로를 닦는 예산으로 설립한 문화관으로 프랑스는 10년 후 가장 앞선 문화국가로 복귀할 것”이라고 했다.

‘문화에 대해 아무런 정의도 내릴 생각이 없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말로의 일갈이다. “모든 이들에게 섹스나 피 못지 않게 중요한 문화와 접촉할 기회를 줘야 한다”. 이제 몇걸음을 뗀 도종환 장관은 취임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 '생명과 생동하는 힘, 녹색의 자기정체성을 가진 나뭇잎처럼 푸르게 살아있기를 소망한다'고. 목타는 가뭄에 메말랐던 잎이 단비를 머금었다.

배성민 문화부장배성민 문화부장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