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검찰의 같은 듯 다른 ‘서울시향’ 수사결과…왜?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06.25 17:18
글자크기

[뉴스&팩트] 경찰 “서울시향 조작극”, 검찰 “모두 혐의없음”…검찰은 무엇을 주요 근거로 삼았나

2014년 12월부터 3년 가까이 끌어온 서울시립교향악단 사태는 검찰의 '무승부' 판단으로 결론을 내는 상황이다. 검찰은 직원의 성추행 고소에 대해 박현정 전 대표의 손을, 박 전 대표의 무고에 대해선 직원의 손을 들어줬다. 사진은 2014년 1월 16일 서울시향 신년 기자간담회 모습. /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br>
2014년 12월부터 3년 가까이 끌어온 서울시립교향악단 사태는 검찰의 '무승부' 판단으로 결론을 내는 상황이다. 검찰은 직원의 성추행 고소에 대해 박현정 전 대표의 손을, 박 전 대표의 무고에 대해선 직원의 손을 들어줬다. 사진은 2014년 1월 16일 서울시향 신년 기자간담회 모습. /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


박현정(55) 전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대표는 경찰에 이어 최근 검찰로부터 성추행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언뜻 보면 3년간 끌어온 이 사건에서 박 전 대표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경찰이 1년간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낸 최종 결론은 박 전 대표의 성추행 무혐의와 함께 서울시향 직원들의 ‘조작극’이었다. 이 말은 경찰이 성추행 관련 당사자와 관계자, 박 전 대표를 모두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성추행 피해자와 관계자들의 진술이 계속 엇갈리자 증언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결론이었다.



경찰은 증언의 신빙성을 위해 호소문 관련자, 예술의전당 관계자(성추행이 발생한 회식 자리에 함께한 관계자) 등을 모두 불러 조사했지만, 얻어낸 답변은 서울시향 직원들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거나 “전혀 낌새도 못 챘는데…”(예술의전당 참석자) 같은 사실과 180도 다른 것들이었다.

증거는 더 충격적이었다. 서울시향 직원들이 서로 주고받은 ‘단톡방’ 내용이나 정명훈 전 서울시향 감독의 부인과 정 전 감독의 비서가 주고받은 대화 내용에서 박 전 대표를 몰아내려는 ‘의도’와 ‘계략’들이 무수히 쏟아졌기 때문이다.



성추행 피해자를 ‘섭외’했다든가, “과장, 거짓말로 대표를 잘라야 한다"는 직원들의 '카톡' 공모 및 조작 내용은 A4 용지로 200여 페이지에 기술돼 있다.

경찰은 이밖에 성추행 피해자 K씨의 거짓말 탐지기 결과, 서울시향 직원 측 변호사의 공모성 발언 등을 종합해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경찰로부터 넘겨받고 수사팀을 이분화했다. 박 전 대표가 ‘호소문 관련 유포자’를 찾아달라는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 제2부(첨수2부)가 맡았고, 서울시향 직원 10명이 성희롱 건으로 고소한 사건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여조부)가 담당했다.


박 전 대표의 법률대리인 A 법무법인 측은 “사건과 물증이 분리된 상태로는 공정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6개 사건을 통합해 객관적 증거에 입각한 진실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박 전 대표도 같은 사건을 하나의 수사팀으로 병합해달라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카톡’ 대화 내용 등 기록물 증거를 보유한 첨수2부와의 병합만이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수사를 담보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사건을 병합하지 않고 여조부에 맡겼고, 여조부는 최근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조부는 두 가지로 나눠 결론냈다. 하나는 서울시향 직원이 고소한 박 전 대표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박 전 대표가 서울시향 직원 3명을 상대로 낸 성추행 피해에 대한 무고에 대해 증거부족을 이유로 무혐의를 내린 것이다.

사안은 두 개인데, 사실은 하나로 수렴되는 내용이다. 모두 성추행과 관련된 내용이어서 유기적 해석이 나올 법한 데, 독립적인 내용으로 다르게 해석한 셈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박 대표도 혐의 없고, 서울시향 직원도 혐의가 없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직원이 고소한 성추행 사건에서 혐의를 벗었고, 이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는 (직원들의) 성추행 고소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무고와 관련해서 검찰은 “직원에게도 (증거부족 이유로) 잘못이 없다”고 손을 들어준 것이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는데,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얘기처럼 들리는 판단이다.

여조부는 다만, 박 전 대표가 한 직원의 신체를 손가락으로 찌른 것을 단순 폭행으로 보고 약식 기소했다.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가 2014년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성추행 등의 혐의로 여론에 밀려 사퇴했으나, 3년 가까운 소송으로 혐의를 벗었다. /사진=홍봉진 기자<br>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가 2014년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성추행 등의 혐의로 여론에 밀려 사퇴했으나, 3년 가까운 소송으로 혐의를 벗었다. /사진=홍봉진 기자
‘손가락 찌르기’의 검찰 판단도 논란이다. B직원이 주장한 이 증언은 2014년 12월 발표된 호소문 내용에서 없던 부분이 ‘생성’과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신빙성이 크게 의심받기 때문이다.

B직원은 호소문에서 ‘손가락으로 가슴을 찔렀다’는 검찰 진술을 밝히지 않았다. 당시에는 박 전 대표가 ‘폭언’만 일삼았다고 24페이지에 이르는 호소문에 적시했었다. 이후 서울시 인권조사에서 B직원은 “손가락으로 어깨를 밀쳤다”는 내용을 처음 밝혔고, 이후 검찰 고소장에선 어깨를 가슴으로 바꿨다. 경찰 조사에서 오락가락한 내용으로 문제 된 진술이 검찰에선 ‘진실’의 효력으로 인정된 셈이다.

‘단톡방’에 나온 내용에는 폭언은 법적 효력이 없으므로 폭행(또는 성희롱)으로 바꿔야 한다는 변호사의 조언이 등장한다. 호소문에 밝힌 ‘폭언’ 형식이 ‘어깨’, ‘가슴’으로 점차 바뀐 이유가 설명되는 배경이다.

검찰은 그러나 “손가락으로 가슴을 찔렀다”는 B직원이 고소장에서 진술한 성추행 부분은 인정하지 않고, 대신 B직원이 정신과에서 진술한 “손가락으로 가슴을 찔렀다”는 기록을 받아들여 폭행으로 약식 기소했다. 같은 내용인 데, 판단은 이해가 쉽게 가지 않은 부분이다. 게다가 박 전 대표는 "손가락으로 가슴을 찌른 적이 없다"고 여러 번 진술했는데도, 검찰은 B직원의 번복된 진술만을 중요한 증거로 삼았다.

검찰의 수사는 기록물 증거 대신 증언에 의존한 경우가 많은 것처럼 비친다. ‘카톡방’ 대화 내용만 봐도, 직원과 윗선의 개입 흔적이 또렷하고, ‘어떻게 공모하고’, ‘어떻게 조작할지’에 대한 정황과 근거들이 세세하게 드러나 있다. 검찰은 “첨수부의 증거물을 확인했다”면서 실제 직원의 오락가락한 증언에 무게를 싣는 듯한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검찰은 박 전 대표도, 서울시향 직원도 다치지 않는 ‘오묘한 결과’를 내놓았지만, 증거를 제대로 채택했는지, 채택했다면 ‘단톡방’에 드러난 충격적인 내용은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했는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수사 결과는 그 자체로 권위와 신뢰의 상징이다. 그런데 경찰과 검찰의 결과는 사뭇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 다르다. 무엇이 온전하지 않고, 무엇이 누락됐을까. 경찰의 ‘과도한 액션’이었나, 아니면 검찰의 ‘소극적 대응’이었나.

경찰과 검찰의 같은 듯 다른 ‘서울시향’ 수사결과…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