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다음 대법원장은 非법관 출신으로"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17.06.26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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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 "대법원 다양성 상실…대법관 절반 이상은 변호사·교수로 채워야"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김창현 기자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김창현 기자


"이젠 비(非)법관 출신 대법원장이 나올 때입니다."

사법개혁의 출발점을 묻자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51)는 이렇게 대답했다. 참여정부 당시 사법개혁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낸 바 있는 임 교수는 그간 꾸준히 사법부 개혁을 외쳐왔다. 현재는 참여연대에서 사법감시센터소장을 맡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임 교수의 주장은 판사 경험이 없는 대법원장이 전국 3000여명의 판사를 이끌게 하자는 것이다. 파격적이다. 하지만 임 교수는 사법개혁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역설했다. 임 교수는 "당장 양승태 대법원장의 후임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다.



임 교수는 "헌법상 대법원장, 대법관은 판사와 엄연히 분리돼 있는데도 판사들의 최종 승진 코스로 여겨져 왔다"며 "판사 출신 대법원장이 판사 출신 후배만을 대법관으로 제청하는 관행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원은 그렇게 획일화, 수직화됐다"며 "판사 출신 또는 현직 판사들이 그런 식으로 대법관으로 바로 입성하는 것을 막으려면 비법관 출신 대법원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떤 점에서 대법원이 획일화됐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임 교수는 '사법개혁 탄압'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라는 법원 내 학술단체가 사법개혁을 주장하는 행사를 열려고 하자 대법원 소속 법관이 이를 방해하려 하면서 불거진 사건이다. 임 교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수평적 관계가 아닌, 감시하고 옥죄는 수직적 관계에서 쌓인 법관들의 불만이 이번에 터져나온 것"이라고 평했다.



임 교수는 재판에서도 대법원의 획일성이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그 예로 'KTX 여승무원' 사건을 들었다. 2004년 KTX 개통 때부터 코레일 자회사에서 일한 승무원들이 코레일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라며 소송을 낸 사건이다. 승무원들은 1, 2심에서 승소했으나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혀 최종 패소했다.

임 교수는 "대법원이 코레일과 자회사를 대등한 계약 주체로 보고 민사적인 법리로 풀었기 때문에 나온 판결인데, 과연 두 회사가 대등하다고 볼 수 있겠냐"며 "대법원이 사회의 현실과 가치를 담아낸 하급심 판결을 보수적인 민사 법리로 뒤집어버린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현장을 발로 뛴 노동 전문 변호사가 대법관으로 있었다면 그런 판결이 나왔겠느냐"고 반문했다.

비법관 출신 대법원장이 나오면 문제가 해결될까. 임 교수는 미국의 얼 워렌 대법원장 이야기를 들려줬다. 워렌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법조인이자 정치인이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자 캘리포니아 주에 있던 일본인들을 모아 포로수용소에 집어넣을 만큼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장이 되고 나서 그는 판결로 미국 사회를 바꾸기 시작한다. 흑인과 백인을 따로 교육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한 '브라운 판결'과 미란다 원칙의 시초가 된 '미란다 판결'이 대표 사례다. 특히 브라운 판결 때 그는 대법관을 한 명 한 명 설득해 만장일치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임 교수는 "워렌은 정치인으로서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었다"며 "그가 평생 법원에서 사건 기록을 열심히 읽고 판례를 열심히 쫓아가는 판결을 내린 판사였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판사 출신 대법관을 없애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중 절반 정도는 재야 변호사나 법학교수 등 비판사 출신으로 채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법원장부터 일선 판사까지 이어지는 수직적 관계를 어떻게 풀 것이냐는 물음에 임 교수는 "대법원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지금 법원 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대법원장과 대법원장을 보좌하는 법원행정처가 인사를 포함한 사법행정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라며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제한하고 행정처를 판사가 아닌 행정공무원으로 구성한다면 대법원장에 집중된 행정권을 분산시킬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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